눈물 나게 고마운 말

내 건강을 나눠줄게

by 윤이나

눈물 나게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말. 감동적이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이십 대 후반. 회사 생활이 안정되자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찾아 나섰다. 뜨개질, 우쿨렐레 같은 취미생활을 시작으로 동호회와 성당 활동을 병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신앙은 망망대해 위에서 정처 없이 흔들리던 내 삶에 닻이 돼주었다.


퇴직한 후에는 좀 더 여유가 생겨 '성서 모임'에 가입했다. 성서 모임이란 가톨릭 신자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함께 묵상하며 신앙을 성장시키는 모임을 말한다. 창세기, 탈출기, 마르코, 요한 각 6개월 과정 (요한은 1년)으로 수료 후 연수까지 다녀와야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세례 받은 지는 오래됐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는데, 이때 했던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창세기 교육이 끝나고 3박 4일 연수에서 나는 생각보다 인원이 많다는 것에 한 번, 그들 중 대부분이 갓 스물을 넘긴 청년들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역대 제일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는 그 해 연수는 뜨거웠고,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개인 성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두 번째 날 저녁. 나무 십자가 앞에 여러 개의 촛불을 켜두고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캄캄한 강당 안에 흐드러진 초의 불빛과 백 명이 넘는 친구들이 모여 앉았다. 수련회의 밤을 장식하던 촛불 기도 느낌이랄까. 지목하지 않아도 청년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담고 있던 소망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위한 기도, 여기 모인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기도, 스스로를 위한 기도까지. 하나하나 모두 공감이 갔다. 각자 다른 삶을 사는 우리지만 생의 굴곡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것 또한 인간이었다.


함께 모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상념에 잠겼다. 밝고 창창한 저들의 미래에 아픔이나 고통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암을 앓았던 나이가 딱 저 나이어서 그랬는지 그들의 맑은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하느님 여기 모인 친구들이 살면서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저는 이미 많이 아팠으니까... 혹시 누군가 그런 일을 겪어야 한다면 제가 아픈 걸로 대신..."

나는 그들에게 자식 같은 연민이라도 느꼈던 걸까. 생각지 못한 말들이 떠올랐다.


너무 내 감정에 빠져서, 그때 분위기에 심취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새싹같이 푸르른 청년들이 질병의 고통에서 허우적대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탈출기 모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광야를 지나는 여정에서 신앙적인 의미를 배우는 탈출기는 그룹원들과 유난히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다. '내 인생의 광야'를 이야기하며 함께 울고 웃었기 때문이다. 중 아녜스는 나와 세례명과 나이가 똑같았던 그룹원이었다.


마지막 모임이 끝난 뒤 우리는 마니또를 공개하고 선물교환식을 했다. 내 마니또는 바로 그녀였다. 아녜스가 선물한 스칸디나비아모스와 시들지 않는 꽃이 기억난다. 그녀는 반려 식물 선물하고 싶은데, 최대한 키우기 쉽고 오래가는 것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모두 처음 보는 식물들이었다. 영원불멸의 생화 장미가 고혹적인 자태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함께 들어있던 봉투에는 그녀가 눌러쓴 편지가 다섯 장(이나) 들어있었다. 언제 이 많은 것들을 다 준비했을까. 나는 오랜 기간 마니또인 나를 위해 기도하며 마음을 썼을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선한 아녜스의 심성처럼 편지에는 감동적인 말들 뿐이었다.


"나는 건강하니까

내 건강을 너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기도했어."


문장을 읽으며 찔끔 눈물이 났다. 사실 아녜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었다. 그녀는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면 깜짝 놀라 한 발자국 물러나던 수줍음 많은 친구였다. 너무 가까운 게 부담일까 봐 그녀를 대할 땐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 거리만큼 마음의 공간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인생여정을 알게 된 후 그녀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 나는 아녜스의 마음이 놀랍고 고마웠다.


한 번도 그녀의 편지를 잊어본 적이 없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꺼내 읽은 아녜스의 글은, 사람의 착한 마음이 누군가에겐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참 성당활동을 했을 때 잠깐이나마 수녀의 삶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성당 어른들이 병문안을 오셨는데, 어린 나이에 이렇게 아픈 것이 혹시 성소(聖召)가 아니냐는 거였다.

'하긴 소화 데레사 성녀도 아픈 몸으로 하느님을 바라는 삶을 살긴 했으니 혹시... 나도?'

잠깐 갸웃했지만 금방 잊혀졌다. 수녀가 되기에는 나는 세속의 일에 너무도 관심이 많았고, 엄마는 환자는 수녀원에서도 거절할 거라고 팩트 폭격을 날렸다.


몇 번의 수술을 더 받았을 때,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폐해가 상상이 되었다.

'아니 진짜 수녀님 돼서 종신서원 하자마자 병이 다 낫는 거 아니야?'

나는 친한 친구에게 말했다.

"왜... 이해인 수녀님 알지?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시잖아. 나도 글 쓰는 거 좋아하니까 내가 수녀님의 뒤를 이어 제2의 이해인... 어때? 수녀님?"

"너? 네가? 수녀님? 안 돼 안 돼. 남자를 너무 좋아해."

성소라고는 '혼인 성소' 뿐인 나는 지금 즐겁게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존경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신간이 나오면 열심히 사서 읽는다.

남편의 잦은 이동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지내는 탓에, 교적은 여전히 예전 성당에 있다. 가끔 주일 미사만 참석하는데, 빠지는 날도 많아 누군가 '날라리 신자'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돌아보면 젊은 시절 한 때나마 신앙심에 불타오르던 날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니, 그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명동에 가면 꼭 성당에 들른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며 격동의 시기를 보내던 나였다. 성당도 사람 모인 곳인지라 좋은 일, 나쁜 일 많았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남이 나에게 베푼 이타심을 몸소 느꼈던 곳도 그곳이었다.


자신의 건강을 나눠주고 싶다던 아녜스의 말이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열심했던 마음도 다 옛날 일이 되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따뜻한 우정과 참된 평화는 여전히 내 안에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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