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 발라 보니까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머리에 피마자유를 바른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처럼 일회용 장갑을 찾아 끼는 폼이 자못 비장하다. 삼일에 한 번 머리 감기 전 피마자로 오일 두피 마사지를 한다. 이마 옆쪽을 시작으로 구석구석 오일을 바르다 보면 머리는 금세 꾸덕해졌다.
선조들은 동백기름을 일부러도 발랐다는데 정갈한 스타일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결혼 3년 차, 아직 남편에게 예쁘게 보이고픈 나는
"여보, 이거 머리 안 감은 거 아니에요. 나 피마자유 바른 거야~" 를 외친다.
한땐 나도 삼단 같은 머리를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가 되어 귀밑 3cm 중학교 시절 한을 풀기라도 하듯 머리카락을 길렀던 것이다. 덕분에 대학 선배들의 말하는 나의 첫인상에는 늘 '긴 생머리'라는 말이 들어갔다. 분신과도 같았던 그 헤어스타일은 스무 살 이후 내 인생에서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타목시펜 때문이다. 유방암 치료제인 호르몬제를 장기 복용하면서부터 눈에 띄게 머리숱이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모발이 힘없고 가늘어지기만 했는데, 요즘은 샤워 후 수채구멍에 고인 머리카락을 치우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여러 번 반복했던 항암치료도 한 몫했다. 항암제의 대부분은 탈모 부작용이 있었고, 한 회차 치료를 끝낼 때마다 머리가 가벼워졌다. 아이가 없으니 그나마 임신 탈모가 없었던 것으로 심심한 위로를 건네본다.
사실 원래 이마가 넓은 편이긴 했다. 그래도 소문자 m과 대문자 M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였다. 탈모에 관심을 가지면서 헤어라인 문신도 해보고, 모발 건강에 좋다는 검은콩, 맥주 효모도 찾아 먹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그녀를 만났다. 그 이름 바로 '피마자유'.
피마자유(캐스터 오일, Castor Oil)는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에서 '자연의 보톡스', '기적의 오일'로 불리며 탈모 완화 및 발모, 두피 건강을 위한 천연 성분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글을 본 것이다. 몇 날 며칠 정보를 수집하고, 해외 사이트들을 검색해 롤러 볼이 부착된 스틱 형태의 피마자 오일을 구입했다. 택배를 뜯는 동시에 바로 뚜껑을 열어 헤어라인, 정수리 그리고 머리가 많이 빠지는 부분 위주로 집중 케어를 시작했다.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쓰는데 불편함도 없었고, 어차피 순수한 오일 성분이라 거부감이 적았다. 떡진 머리를 몇 번씩 헹궈야 했어도 머리숱만 풍성해진다면 번거롭지 않았다.
몇 달 뒤 헤어라인 앞쪽에서 송송히 올라오는 새 모발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쳤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개인에 체질에 따라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피마자 오일은 다행히 나와 찰떡궁합이었다. 그 후 매일 꿈나라에 갈 때 피마자유를 챙겼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머리숱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는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피마자유가 발모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무렵, 오일의 다른 효능에도 눈길이 갔다. 피마자유에는 각종 비타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모발성장과 두피 영양공급에 도움이 되고, 피부미용에 좋은 리시놀렌산 에르테르라는 성분이 기미, 주근깨, 잡티, 여드름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기미, 주근깨를 없애 볼 요량으로 나는 피마자유를 볼과 광대에도 바르기 시작했다. 선크림을 꼼꼼히 발랐지만 매일 햇빛 보면서 1시간씩 걷는 나로서는 잡티가 숙명이었다. 거울 앞에 앉아 곱게 빗은 머리에 한 번, 얼굴에도 한 번 사이좋게 피마자오일을 발랐다.
그리고 얼마 뒤... 볼에 털이 났다.
광대에 있는 솜털이 검고 진하게 자랐다. 계속 발랐더라면 아마 땋아도 됐을지 모르겠다. 나는 매일 눈썹칼로 볼에 난 털들을 제거해야만 했다.
잊고 지내던 피마자유를 요즘 다시 바르고 있다. 모공이 막힐까 봐 너무 오래 방치하지는 않고 예전처럼 자주 바르지도 않는다. 마법처럼 숱이 늘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굵고 건강한 머리카락이라도 선물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쏟는 것이다.
산뜻하게 올려 묶은 똥머리, 치렁치렁한 라푼젤의 긴 머리...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너는 알까. 이런 내 마음.
*주의*
민간요법은 개인에 따라 효과와 부작용이 다릅니다. 섣불리 따라 하시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