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진은 남는다
남편과 나는 4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성당에서 약식 혼배를 하고 가족, 친한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예식 전 명절을 낀 일정으로 유럽 신혼여행을 떠났다. 야외 스냅사진을 찍을 생각에 우리는 잔뜩 들떠있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제일 힘을 준 게 바로 신혼여행 스냅사진이었기 때문이다.
허니문 일정은 로마와 피렌체, 베네치아를 3일씩 머무는 일정이었고,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한국인 작가님과 야외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 날을 위해 한국에서 직접 드레스와 구두, 각종 액세서리들을 공수하느라 신경 쓴 일이 이만저만도 아니었다.
남편의 예복도 일부러 피렌체 도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색으로 골랐고, 나의 드레스 역시 샴페인 색에 미카도 실크 원단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새하얀 색보다 코랄 빛이 도는 은은한 샴페인 색이 나의 퍼스널 컬러라고 했다. 흰색에 미련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피렌체'와 잘 어울리는 건 역시 후자였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다.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결혼식 날짜가 마침 주말이라 성당에서 식을 올릴 수 있었고, 남편의 직장 후배가 축가를 자처하면서 간단하게 식사만 하려던 자리가 근사한 피로연이 되었다. 파티가 끝난 후 친구들이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같았다며 참석했던 스몰 웨딩 중 최고였다."
고 엄지를 날려주었을 때 진정 나는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다 좋을지 알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로마 일정 이후 막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숙소 계단을 내려오다 대차게 넘어졌다. 꺾인 발에서 정확히 '우두둑' 소리가 났다. 유럽의 건물들은 대리석과 같은 돌계단이 흔한데 반들반들한 계단을 핸드폰을 보면서 내려오다 미끄러진 것이다.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우두둑' 소리가 너무 선명해서 통증과는 별개로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그놈의 '티본스테이크'가 뭐길래.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하면 20프로 할인해 준다는 정보에 식당으로 가면서 휴대폰을 한 게 화근이었다. 왜 이렇게 맨들맨들한 계단에 미끄럼방지 테이프도 붙어있지 않는지. 나 말고도 넘어진 사람들이 분명히 더 있을 거였다. 하지만 누구에게 화를 내겠는가. 부주의한 나를 탓해야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마치고, 약국에 들러 먹는 약 바르는 약을 잔뜩 구입했다. 숙소로 돌아와 베개를 위에 다리를 올리고 쉬어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발이 부어올랐다. 처음에는 남편의 부축만으로 견딜만했는데, 나중에는 남편에게 업혀서 화장실을 오가는 신세가 됐다. 발이 코끼리 다리가 되었다.
'당장 내일이 촬영인데... 신혼여행 3일 차인데...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도 안 나왔다. 정신 차리고 사진작가님께 연락했다. 퉁퉁 부은 발 사진을 보내고 지금 상황이 이래서 내일 촬영을 한 자리에 앉아서만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어차피 하루 전이라 취소 환불은 불가능했고, 피렌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3시간의 촬영은 소화 불가능이었다. 긴 이야기 끝에 이동 최소화, 최대한 앉아서, 이동할 때는 택시로... 여러 가지 협의를 하고 잠을 청했다.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어차피 잘 자고 좋은 컨디션으로 사진 찍기는 글러먹은 시간이었다. 새벽 2시 나는 남편과 응급실로 향했다. 인적 사항을 적고 증상을 이야기했다. 이미 택시에서 내려 남편에게 업혀 들어온 나를 보고 간호사들이 휠체어를 가져오고 있었다.
동틀 무렵이 돼서야 진료실로 들어갔다. 엑스레이를 살펴본 의사는 "미세한 손상"이 있다고 했다. 골절이냐고 물어봤지만 그건 아니라고. 분명 엑스레이 상에 내 발등 위로 작은 뼛조각이 보였다. 의사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약을 처방해 주었다. 맞은편 의료기기 상점에서 깁스를 구입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남편에게 업혀 상점으로 갔다. 세상 작고 귀여운 남편이 나를 업다가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아 유 오케이?"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아하하하. 아임 오케이. 오케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제발 이쪽으로 건너와서 도와주지 않으셔도 돼요. 정말이요.'
눈빛으로 호소했다.
일주일치 자가 주사와 진통제, 항생제 그리고 통깁스를 구입했다. 무릎까지 고정되는 장대한 의료기기였다. 나는 그 깁스를 하고 메이크업도 받으러 가고, 생화 부케도 사러 가고, 얼레벌레 신혼여행 스냅 촬영도 마쳤다. 한 장면 찍고 다시 깁스하고, 또 한 컷 찍고 깁스하고. 절뚝거리는 탓에 걷는 씬, 업는 씬, 신랑이 신부를 안고 도는 씬은 모두 탈락이었다. 대부분 앉아서 촬영했고, 그나마 피렌체 두우모가 잘 보이는 숙소를 골라 호텔 옥상에서 찍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5일 이상 남아있던 우리의 신혼여행 일정은 그야말로 각종 의료기기들의 향연이었다.
남편이 다른 일정은 다 포기해도 '우피치 미술관'은 꼭 가보고 싶다 해서 휠체어를 대여해 관람했다. 입장권을 미리 예약했어도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휠체어는 그냥 통과였다. 내가 지나만가도 사람들이 길을 터주고 엘리베이터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조금 웃펐지만 어쨌든 우피치 미술관을 보기는 봤다.
피렌체에 다녀왔지만 나는 아직도 두우모 성당 내부를 모른다. 대신 성당 근처 약국이 어디 있는지, 몇 개 있는지는 바삭하다. 사실 이탈리아 신혼여행을 통틀어서 뭘 보고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억울한 생각이 들어 기차역 매점에서 산 '마그넷'이 내가 사 온 쇼핑 리스트의 전부였다. 로망 가득했던 아웃렛이여 안녕...
베네치아 일정에서는 그래도 다리가 좀 나아 절뚝거리며 수상택시도 타고, 산 마르코 광장에도 다녀왔다. 항상 하루 끝에 나누던 대화는 "나중에 다리 다 나으면 꼭 또 오자~" 로 마무리 되었다.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더니 신혼여행 때 크게 넘어진 것으로 전부 액땜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으로 돌아와 찾아간 병원에서 '골절'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이 다리로 어떻게 유럽 여행을 했느냐고 물었다. 몇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으니 두 군데가 골절이었다. 복숭아 뼈 근처와 발등에 미세한 금이 보였다. 역시 내가 들은 '우두둑' 소리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맞았다. 응급실에서 본 그 삼각형 모양의 뼛조각도 그때 부러진 게 틀림없었다.
'난 어떻게 이 발로 유럽 돌길을 걸어 다녔지?'
신혼여행은 골절도 이겼다.
한편으로는 그 이탈리아 의사에게 고마웠다. 그때 골절인걸 알았다면 더 몸을 사리고 못 다녔을 텐데, 미세한 손상이라고 해줘서 그래도 온갖 의료기구에 의존해 어떻게든 다녀보려 했다.
제일 미안한 사람은 역시 남편이다. 나 때문에 남편의 첫 유럽 여행은 멀쩡한 다리로 보낸 로마 일정 말고 남는 게 없었다. 젤라토랑 랍스터 파스타를 아무리 맛있게 먹었어도 위로가 안됐다.
우리는 나중에 유럽에 다시 가서 피렌체도, 베네치아도 천천히 둘러보기로 약속했다. 그때는 절대 길에서 핸드폰도 안 보고, 계단은 특히 조심하고, 다리 아프다고 하면 우리 신랑 번쩍번쩍 업어서 호화 여행 시켜줄 것이다. 여보, 땅에 발 닿을 일 없을거야. 나만 믿어!
그래도... 사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