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탄생

그때 내가 제일 많이 한 말

by 윤이나

눈물의 신혼여행이었지만 지금도 우리 집 곳곳에 걸려있는 피렌체 사진을 볼 때면 흐뭇함이 차오른다. 역시 사진은 남는 거였다.


피렌체를 떠나 베네치아로 가는 열차 안에서 우리는 사진 작가가 보내준 원본 사진을 구경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었다. 보정도 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였지만 노을 진 석양하며 피렌체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다친 발 때문에 회전목마 타고 뱅글뱅글 도는 장면, 신랑에게 안겨 앙큼한 포즈를 취하는 장면 등이 생략됐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훌륭했다.


매우 만족 별 다섯 개를 속으로 열 번 정도 외치며 그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제일 중요한 과정이 아직 남아있었다. 수천 장의 원본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보정하고 싶은 30장을 정하는 것이다. 각 사진에는 보정을 원하는 내용을 텍스트로 적어 전달해야 했다. 그날부터 매일 저녁 '이상형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신혼여행 스냅사진을 고르며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있다. 눈 크게, 코 오똑하게, 턱 갸름하게도 아닌


- 신부 몸통 폭 좁게 ^^


괄호치고 (자연스러운 선에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가져간 드레스는 미카도 실크 원단의 샴페인색 드레스였다. 원단 자체가 탄탄하고 형태 고정력이 있어 허리라인이 무너지지 않으며 스커트 볼륨이 산다는 장점이 있었다. 은은한 진주빛 광택이 있어 조명을 받으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실크 중에는 두꺼운 편이라 무게감이 있었지만, 캐리어에 넣어 가야 해서 구김이 덜한 미카도 실크 원단 드레스는 여러모로 최선이었다.


발목 부상으로 앉아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라 미카도 실크 특유의 촤르르하게 떨어지는 매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조명 아래 서서 예쁘게 이리저리 자유롭게 포즈를 취할 수 있었더라면 진주빛 광택과 실크의 매력을 더 뽐낼 수 있었을 텐데, 줄곧 앉아있어야만 했던 나는 어딘가 모르게 통자(?) 느낌 나는 허리 라인에 자꾸 시선이 갔다.


"여보. 1번 사진이에요. 수정하고 싶은 부분 불러주세요."

"네. 음... 일단 신부 몸통 폭 좁게요."

"다음 사진. 뭐라고 쓸까요?"

"신부 몸통 폭 좁게. 아 그리고 (자연스러운 선에서) 라고도요~"


나는 그렇게 매일 밤 "신부 몸통 폭 좁게"를 외쳤다. '몸통'이라는 단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몸의 폭'도 '허리'라는 말도 몸통보다 잘 어울리기는 힘들었다.


몇 달 뒤 완성된 사진이 도착했다. 발을 내어주고 얻은 사진이었지만 마음에 쏙 드는 것이 눈물 날 지경이었다. 자연스러운 선에서 보정된 몸통 폭도 완벽했다.




가끔 피렌체에서 찍은 사진들을 찾아볼 때면 그때 그 바람, 공기, 온도, 햇살, 설렘들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다리, 미켈란젤로 언덕, 피렌체 두우모가 잘 보였던 호텔의 옥상까지 사진에 나온 장소들을 따라 다시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덜 지나다닐 때 무조건 사진을 찍어야 해서 정신이 없었는데, 돌아와 남편과 함께 공들여 사진을 고르고 앨범을 들춰보며 비로소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베키오 다리 위에서 촬영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오가는 관광객들의 축하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곳이었다.

"콩그레츄레이션!"

생일날 듣는 이 말이 결혼에도 정말 잘 어울리는 단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미소를 띠며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

"뷰티풀~"을 외치며 지나가는 학생들,

미국에서 왔다는 한 노부부는

"본인은 결혼한 지 50년이 넘었다며 행운을 빈다."

했다.

우리는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연신

"땡큐"를 외쳤다.


온 세상이 우리를 축복해 주는 느낌. 살면서 한 번쯤 이런 기분에 취해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이었다.




내년에 떠나는 남편의 장기 연수가 유럽이 된다면 하얀 드레스를 입고 돌로미티 스냅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결혼 십 주년에는 제주 남쪽의 노을이 좋은 곳에서 한복 촬영도 할 것이다. 그저 아이 없이 둘이 사는 부부의 로망이다.

사실 결혼식을 스몰웨딩으로 진행하면서 스튜디오 촬영, 한복 촬영 등의 과정을 많이 생략했다.

"그래도 이때 한 번인데. 다 찍지."

엄마의 말에도

"난 웨딩드레스에 별로 미련 없어."

이 말이 백 프로 진심은 아니었나 보다.


지금은 '신부 몸통 폭 좁게'를 외치던 때보다 4킬로는 더 빠졌으니, 더 이상 몸통을 외칠 일은 없을 것이다. 재활에 성공한 쌩쌩한 다리로 걷고, 뛰고, 안고, 돌면서 보다 감각적인 포즈를 취해봐야겠다. 이왕이면 그때쯤엔 집도 조금 넓어져 사진 놓을 자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전 07화신혼여행은 업혀야 제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