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날개옷을 입는다

무무템을 소개합니다

by 윤이나

내 남편은 날개옷을 입는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남편은 혹서기 아이템들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한다. 소위 말해 '무무템'들이다.


남편은 몸에 열이 많은 편이다. 신기하게도 손발은 괜찮은데 유난히 몸통에만 땀이 많았다. 봄바람이 살랑이는 때에도 서늘한 가을에도 남편의 이부자리는 늘 축축했다. 덕분에 혼수로 장만한 구스다운 이불은 오롯이 내 차지였다. 신랑과 한 이불 덮고 자는 게 대단한 로망도 아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런 날은 시집온 후 단 하루도 없었다. 몸이 찬 아내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남편은 언제나 두께가 다른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무무는 항상 통기성이 좋은 얇은 런닝과 단출한 차림으로 잠을 청했다. 더 줄일 것 없는 복장인데도 아침마다 땀에 절여져 일어나는 남편이 신기했다. 나는 분명 으슬으슬 추웠는데. 구스 다운 이불이 따뜻하니 좋았는데. 남편은 잠옷도, 이불도 모두 내 것보다 훨씬 얇 것을 두르고 있으면서 땀을 흘렸다.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옆 자리에 손이 갔다가 그 '척척함'에 잠이 싹 달아난 적도 있었다. 숙면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렇게 땀이 많이 나니 본인은 얼마나 괴로울까 싶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한의원에도 같이 가보고 좋다는 약, 음식들도 열심히 찾아 먹였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그렇게 여름이 왔다. 결혼 함께 맞는 첫여름이었다. 열대야가 극성이라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실 에어컨을 틀어놓고 나는 이불속에서 단잠을 잤지만, 무무는 며칠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몸이 다 뜨거운 건 아니고 등과 목 앞쪽은 땀이 나는데, 배랑 팔, 어깨는 차다고 했다. 어려운 난이도(?)의 무무 몸을 함께 걱정하며 '내 남편은 변온 동물인가 싶어' 살짝 갸웃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여름은 일단 잘 나고 볼 일이었다.

정리해 보면 홀가분한 차림으로 이불 없이 자자니 배랑 어깨가 시리고, 갖춰 입게 되면 베갯잇과 이불을 계속 빨아야 했다.

무무는 결심한 듯 사부작사부작 검색을 이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신박한 아이템들이 속속 집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본 물건들의 정체는 '산모용 복대'와 '운전자용 팔토시'였다. 모두 부드럽고 공기가 잘 통하는 소재였다.

무무는 가위 하나를 들고 방에 들어가 열심히 공작을 하더니, 본인의 몸에 맞게 복대의 기장을 뚝딱 줄여서 나왔다. 신축성이 있어 숨 쉴 때 불편하지 않다고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핸드메이드 제품을 주문 제작하는 사이트에서 산 팔토시 또한 범상치 않았는데, 손등을 덮는 부분이 어깨로 올라가야 해서 '최대한 폭을 넓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햇빛에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착용하는 팔토시는 년 여름 남편의 양쪽 어깨에 기특하게 잘 올라가 있다.


소중한 무무템

새하얀 복대와 레이스가 달린 팔토시를 하고 남편은 비로소 꿀잠을 잤다. 아침마다 상쾌한 표정으로 무무템들을 곱게 접어 이불 밑에 넣어 두었다가 밤이 되면 꺼내 입었다. 선녀도 날개옷도 이렇게 소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과연 이게 효과가 있나?'

싶었던 의문스러움은 나만의 것이었다.

무무는 여행 갈 때도 친정에서 자고 오는 날에도 '천사 날개'와 복대를 제일 먼저 챙겼다. 언제부터인가 팔토시라는 말 대신 '천사 날개'라는 단어가 우리 사이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가끔 안방에서 청소기를 밀고 있으면 이불 사이로 삐져나온 천사 날개가 눈에 들어온다. 날개 옷 옆으로 아마 복대도 다소곳이 놓여있을 것이다. 매일 밤 남편의 배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무무템들이 고마워 주기적으로 빨아 뽀송함을 유지해 준다.




한 번은 남편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무무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몇 달 동안 신생아 인큐베이터에 있었다고 한다.

"칠삭둥이가 아니라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다 채워서 나왔더라면... 지금보다 키도 더 크고, 팔다리도 더 길었을 텐데."

남편은 농담 반 진담 반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괜찮아. 여보. 나 키 큰 남자 별로 안 좋아해. 여보 정도가 딱 좋아."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지만, 남편은 키에 미련이 남은 것 같았다.

아토피성 피부도, 비중격만곡증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해야 했던 코도. 더 건강하게 태어났다면 피할 수 있었을지 무무는 늘 궁금해했다.


"여보, 윈스턴 처칠도 칠삭둥이였데. 아이작 뉴턴이랑 한명회도. 내가 여보 큰 사람 만들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큰 소리로 남편을 위로했다. 별다른 대책은 없었지만 더 잘 먹이고, 열심히 내조해서 회사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바람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데, 내 남편은 날개옷을 입는다. 프라다의 P자도 모르는 무무는 악마가 아님에 틀림이 없다. 천사 남편의 팔토시와 복대는 올해도 무무가 쾌적하게 여름을 나도록 기꺼이 도울 것이다. 꽤 기분 좋은 동침이다.

여보, 괜찮아. 어차피 인생은 기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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