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카에 대한 로망
드림카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있다. 대학교 때는 딱정벌레를 닮은 폭스바겐 뉴비틀이 그렇게나 예뻤다. 노오란색, 연두색 국산차에는 없던 그 상큼한 색깔들이 얼마나 매려적이던지. 동그랗고 귀여운 디자인도 내 마음을 뺐는데 한 몫했다.
"요즘 뉴비틀이 예쁘던데... 폭스바겐."
철 모르는 딸내미가 흘리는 말에 엄마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선택해. 혼수 해갈건지 차 살건지."
그러면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아무래도 차보다는 혼수였다. 아직 내가 벌어서 모은 돈으로 시집간다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이라서 그런지 나는 고심 끝에 하나를 선택했다.
취업 후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월급의 반 이상은 저축했고, 백화점, 아웃렛보다는 인터넷 쇼핑으로 최저가를 꼼꼼히 따져본 후 구입했다. 하지만 대리를 달기 전 나는 앓던 병의 재발로 속초로 내려가게 되었다. 대중교통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자주 다니지는 않다 보니 차량이 필수였다. 갑작스러운 두 집 살림에 아버지는 엄마와 내가 타고 다닐 차를 장기 렌트해 주셨다. 주차를 어려워하던 내가 타기 딱 알맞은 사이즈의 차였다. 서울 집, 병원과 왔다 갔다 하면서 고속도로 이용이 많았기 때문에 너무 작지 않으면서도, 속초의 좁은 골목들을 유연하게 통과할 수 있는 준중형 차였다. 애칭은 없었지만 '초보운전' 스티커를 고르면서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계약 기간 만료 후 타고 다니던 차는 반납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 진지하게 차량 구입을 고민하는 순간이 왔다. 그때 내게 남은 건 훌쩍 많아진 나이와 경력 단절 그리고 아픈 몸뿐이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고가 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또 정기 검진을 통과하지 못했다.
'다시 출근할 수 있을까? 평범했던 회사원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잠시 가졌던 꿈이 저 멀리 가버렸다.
어차피 (언젠가) 다시 일을 할래도, 장거리가 되어버린 남자친구 (현 남편)와 연애를 하려고 해도 차는 필요했다. 아버지는 정기 검진에 자주 당첨되는 딸이 안쓰러웠는지 원하는 차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여전히 디자인 하나만 고려했던 나는 '미니 쿠퍼'를 떠올렸다. <커피 프린스> 드라마에서 공유가 타고 나온 자동차였다. 전에 같은 동호회였던 친구도 미니를 탔는데 실물은 더 근사했다. 아빠는 선뜻 알겠다고 했지만 차를 사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외제차 사면 수리하고, 보험료도 엄청 비싸. 그거 감당할 수 있으면 사는데, 안 그러면 그냥 국산차가 낫지."
"그럼~ 똑같이 고장 나도 부품값이 따블인데, 차량 유지비도 더 많이 들고. 괜찮겠어?"
다시 치료에 들어가는 내가 언제쯤 비싼 차를 유지할 능력을 갖추게 될지 요원했기 때문에 타협을 해야 했다. 결국 아반떼가 나의 첫 차로 낙점됐다. 차량을 받던 날 은은한 펄과 '아마존 그레이' 색상이 예뻐 몹시 만족스러웠다.
꿈꾸던 폭스바겐의 귀엽고 깜찍한 차들은 어디까지나 로망이었지만 그래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빠가 차에 묻은 먼지를 털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날의 아찔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차 안에 물건을 두고 왔다며 아빠는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한참 있다 올라온 아빠는 차를 닦아주려고 먼지 브러시로 여기저기를 청소하다 AVANTE의 'A'를 떼먹었다고 했다. 아빠의 손에는 은색 반짝이는 'A'자가 들려있었다. 차를 산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였다.
미니 쿠퍼였으면 좋았을 나의 첫 차는 아반떼도 아닌 '반떼'가 되었다. 나는 울상이 되었지만 당분간은 반떼를 몰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소나타에서 'S'자를 떼서 간직하면 서울대 간다고 했던 썰은 들어봤어도, 아반떼의 A는 어디에 효과가 있는 걸까.
'Ajoo Gungang? (아주 건강), Anti-aging?'
A가 들어가는 좋은 일들을 떠올려 보다가도, 차량 뒷면의 'V.A.N.T.E' 표시를 보면 어이가 없었다. 며칠 뒤 아빠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AVANTE 영문판을 사서 'A'자를 도로 붙여주었다. 아방이는 그렇게 A를 되찾고 원래의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치료 기간 내내 아방이를 타고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춘천도 가고, 세종도 가고, 우리가 살던 속초의 바다에도 가며 많은 곳을 여행했다. 결혼 전까지 2년 간은 장거리 커플이었어서 차를 구입한 지 4년 만에 10만 킬로를 달렸다. 아방이 이 녀석! 아주 기특했다.
결혼하면서 남편이 타고 다니던 중고차를 팔게 되었고, 이제 우리 부부에게 아방이는 소중한 자산이자 유일한 동반자다. 추운 날 엉덩이도 데워주고, 더운 날에는 등까지 시원한 바람을 숭숭 쏴주는 그가 있어 우리는 지금도 가고 싶은 곳을 전부 다닐 수 있다.
꿈은 크게 꾸라고 했으니까 재테크에 몰두 중인 남편을 보면서 나는 슬며시 '드림카'에 대한 로망을 다시 꺼내본다.
"여보 나중에 우리 집도 사고, 돈 많이 모으면 더 좋은 차도 타보자~"
남편은 반드시 그러겠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알고 있는 좋은 차들이 다 나온다.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사실 이번 주에 검진을 다녀오면서 주차장 기둥과 아방이의 은밀한 접촉(?)이 있었다. 90도로 꺾어서 올라가는 주차타워였는데 운전대를 크게 돌린다고 돌렸는데도 왼쪽 뒷문이 콘크리트 기둥에 쓸렸다. 컴파운드도 소용이 없었다. 군데군데 우그러진 부분과 도색이 벗겨져 하얗게 빗금이 갔다. 장거리를 많이 뛰면서 요즘은 주차왕, 주행왕이었는데 하필 병원에서 차를 긁어먹다니. 마음이 찢어졌다.
조수석 문은 누가 그랬는지 모를 문콕 흔적이 있고, 운전자석 뒷 문은 엊그제 일로 흠집이 났다. 차량 내부도 깨끗하고 관리도 열심히 했지만 차는 소모품이다 보니 타면 탈수록 닳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훌륭한 연비와 알찬 옵션으로 우리 부부의 발이 되어주는 아방이에게. 한 때 '반떼'가 되게 했음을 사과하며 한 마디 남기고 싶다.
"작고 소중한 아방아, 여기저기 좋은 곳 많이 데려다줘서 고마워. 도로에서 만나는 멋진 차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드림카에 대한 로망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너와 헤어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건 절대 아니야. 그저 우리 좋은 때가 되면 서로의 갈 길을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