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긁히지(도) 않는 이야기
회사를 그만두고 교육대학원 진학을 위해 온라인 대학에 편입했다. 교직이수 자격증을 위해서는 선행 점수가 필요했는데, 나는 전공이 '국문학'이 아니라 관련 점수를 취득해야 했다. 삼십 대 초반 다시 학생이 된 나는 티셔츠에 운동복 편한 차림으로 도서관을 오가며 대학원 준비에 열을 올렸다.
엄마 심부름으로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 한 근을 사려고 들어갔을 때 점원이 말했다.
"사모님~ 오늘 들어온 고기 좋아요. 애기 먹을 거 찾으세요? 아기 먹일 거면 이거 괜찮아요."
"..."
나는 사모님도 아니었고, 아기는커녕 애 아빠가 될 사람도 없었다. 올빼미가 대문짝만 하게 그려진 연보라색 맨투맨도, 수험서를 넣은 큰 기방도, 누가 봐도 학생템이었던 안경도 내가 학생임을 말해주지 못했다. 기름기 없는 질 좋은 고기는 애기가 아닌 내 입으로 들어갈 장조림 거리였다.
앞에 유모차를 끈 아기 엄마가 고기를 주문하고 있었다. 고깃집 사장님은 그 엄마를 응대는 와중에 새로 온 손님을 놓칠 새라 '사모님'과 '애기 먹을 거'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사모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모님 애기 먹을 거 찾으신댔죠? 이거 기름 없어요. 오늘 들어온 건데..."
그 남자가 그 얘기를 한 세 번쯤 반복했을 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저 애기 엄마 아닌데요. 사모님도 아닌데요."
옆에 있던 진짜 애기 엄마가 흠칫 놀라 나를 바라봤다. 남자는 하나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쳤다.
"에이~ 손님. 제가 손님 높여서 부르려고 사모님이라고 한 거죠~ 애기 엄마는..."
사장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지만 끝내 '애기 엄마'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사과받으려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나는 애기 엄마도, 아줌마도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다. 서비스가 불만이라면 다시 안 가면 될 텐데, 나는 그날따라 나답지 않게 가자미 눈으로 사장님을 쏘아보다가 딱 잘라 말했다.
이십 대 후반부터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했다. 삼십 대 중반까지는 앞다투어 경쟁하듯이 전부 시집을 갔다. 아무리 요즘 '비혼'이 많고 혼자 사는 1인 청년 가구 비율이 늘었다고 하지만, 막상 주변에는 비혼도 딩크도 없었다. 다들 때가 되면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는 금방 아이 엄마가 되었다. 연애에 별로 관심 없었던 친구들도 하나, 둘 나이가 차면서 가정을 꾸렸다.
스물아홉 암 재발로 낙향한 나는 그 후로도 자주 아팠던 탓에 연애도 결혼도 직장도 내려둔 상태였다. 대학원을 위해 공부하던 중에도 병은 잊을만하면 또 나를 찾아왔다. 결혼과 출산, 육아... 이런 단어들은 아무래도 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말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의 결혼식과 돌잔치에서 열심히 박수를 칠 수 있었던 건 신박한 마인드 컨트롤 덕분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과 저들이 사는 세상은 다른 곳이야. 내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야.'
정신승리는 꽤 효과적이었고 덕분에 나는 친구들이 아줌마가 되고, 애기 엄마가 되는 과정을 내 일처럼 축하해 줄 수 있었다. 신이 나에게 건강을 주지 않았어도 명랑한 성격과 강철 멘탈을 준 것은 참 다행이었다.
처음 엘리베이터에서 '아줌마' 소리를 들었을 땐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괜찮다. 내가 미혼일 때도 사실 내 친구들은 이미 아줌마, 애기 엄마였다. 이제 결혼도 했으니 나도 공식적인 아줌마다. 아줌마가 몹쓸 단어도 아니고, 애가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게 더 어색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줌마까지는 괜찮은데 '애기 엄마'는 조금 낯설었다. 지금 사는 세종시는 출산율 1위의 도시로 아이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어딜 가도 '애기 엄마' 소리를 면할 수가 없었다. 늦은 결혼과 유방암 호르몬 치료제를 장기 복용하게 되면서 쭉 자녀 없이 살 것 같긴 하지만, 다들 '애기 엄마'라고 하니 그저 가만히 듣고 있는다. 그냥 '저기요.' 같은 단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요즘은 그런 소리를 들어도 그 부엉이가 그려진 연보라색 맨투맨을 입고 고기를 주문하던 때처럼 발끈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열 살은 더 먹었으니 그 호칭들은 모두 지당하다. 한 번은 자녀에게 사춘기가 빨리 올까 걱정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가짜 애기 엄마'인 나도 상상해 보았다.
'아이가 있었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매일 아침 따뜻하게 끓인 보리차를 마시며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은 아무래도 어렵겠지? 그래도 아이가 주는 기쁨이 있으니 아이랑 산책도 가고, 어린이 집도 가고, 한글도 가르치고...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겠지.'
아이는 없지만 나는 잘 돌봐야 할 내 한 몸이 있다. 젊은 나이라 회복도 빨랐지만 여러 번 항암치료를 반복하며 약해진 체력과 예민해진 신체를 잘 다독여야만 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몸에 금방 신호가 왔다. 그리고 나보다 어린 우리 남편도 내가 아이처럼 돌봐야 할 존재다. 무무는 공부와 회사일에 특화되어 있어 간식으로 배를 먹으라고 하면
"배가 어딨지...?"
머리를 긁적이며 냉장고 앞을 서성이기만 한다. 매일 아침 남편의 옷을 챙겨주는 일, 간식과 야식을 챙기는 일도 아이를 돌보는 마음으로 즐겁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들이 언젠가 좋은 기회로 책이 될 수 있다면 또 평생 글을 쓰며 진짜 작가로 살 수 있다면. 그것들도 오롯이 내가 낳아 키운 자식 같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줌마도, 애기 엄마도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그 순리 같은 일이 나에게는 참 어려웠다.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지금도 아득하지만,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인내와 끈기로 아줌마가 된 나를 칭찬하며 조심스럽게 '할머니'라는 말에 도전해본다.
결혼 후에 새롭게 생긴 꿈은 '명랑한 부자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자주 많이 아팠지만 내 몸과 내 병을 잘 다스려 꼭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다. '아줌마, 애기 엄마'라는 호칭을 오백 번 정도 들으면 내가 바라는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 같아서 이제 기꺼운 마음으로 화답하기로 했다. 방.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