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아저씨와의 인연은 꽤 오래 이어졌다. 2015년 처음 봉사를 시작해 코로나로 수사회 방문이 금지되었을 때도 간간히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내가 건강상의 이유로 속초로 이사한 후에는 정기적으로 들를 수는 없었지만 서울 일정이 있거나 병원 스케줄에 맞추어 요셉아저씨를 보러 가곤 했다. 아저씨는 친한 봉사자의 방문이 뜸해지면 전화를 해 '언제 오느냐'라고 묻곤 했는데, 아마도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전화가 점점 잦아지고 있던 어느 여름날 아저씨가 좋아하는 수박을 썰어 수사회로 향했다.
모처럼만의 만남이었고, 지난번에 아저씨가 수박이 먹고 싶다고 말한 것이 기억나 어머니가 썰어둔 수박을 담아간 것이다. 수사회는 공동생활이었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에 식사가 배식되고, 후원으로 과일이나 간식이 들어와도 똑같이 나눠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박을 좋아하는 아저씨는 냉장고에 수박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만큼 수박을 반가워했던 아저씨는 기분 좋게 과일을 다 잡수셨다. 줄곧 누워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액체류를 제외한 모든 음식이 들어가면 스스로 배를 움직이며 소화 운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항상 소량의 음식만 드셨는데, 그날따라 수박을 달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잘 가져왔지 싶었다. 아저씨의 먹는 속도에 맞추어 과일을 한 점씩 입에다 넣어 드리며 그간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몇 년 뒤 남자친구와 함께 수사회에 들렀을 때였다.
가끔 아저씨에게 연애 상담을 할 때가 있었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생기면 아저씨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저씨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우리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했다.
"오른쪽 발을 조금 더 옆으로 옮겨달라. 베개가 딱딱해서 천으로 싸야 하는데, 이쪽을 고정시켜 달라."
우리는 힘을 합쳐서 아저씨가 부탁한 소소한 것들을 해냈다. 아저씨가 말을 이어갔다.
"얘가 참 착해요. 보통 봉사하는 청년들이 퇴근하고 들르면 방 닦아달라고 부탁하면 '아저씨 나 힘들어~' 그러고 마는데, 이나는 앉아서 깨끗하게 방 청소도 다하고 뭐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요."
생각지도 않은 칭찬에 나는 조금 겸연쩍었지만 그래도 경청하고 있는 남자친구 모습에 으쓱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 여름이었는데... 나 준다고 아이스박스에 수박을 썰어서 가져왔다니까요. 날도 엄청 덥고 땀도 많이 났을 텐데, 그걸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들고 왔어. 나 준다고."
기억이 가물가물 했던 수박이야기도 꺼내셨다.
그런데 아저씨의 말이 길어질수록 나는 미안함이 들었다. 큰 통을 꺼내 수박을 하나씩 덜면서 나중에는 당도가 덜한부분도 눌러 담고 있었기때문이다. 아저씨는 싱거운 수박을 먹으면서도 나에게 마음 깊이 고마워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별 것 아닌 호의가 누군가에게는 몇 년을 품고 있는 고마운 마음이라는 사실에 먹먹해졌다.
몇 달 전 성당에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며 나는 요셉아저씨와 수박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저씨가 갑자기 하늘로 가버려서 더 맛있는 것을 들고 찾아갈 기회가 없었다. 아저씨에게 든 미안한 마음들도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빨리 가실 거였다면 더 자주 찾아뵙고, 더 자주 통화 할 걸 싶었다. 운전하거나 일하고 있을 때 아저씨 전화가 오면 바쁘다고 다급하게 끊은 적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만 후회가 남는 것도 사실이었다.
가끔 요즘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에는 요셉아저씨가 떠오른다.
"아저씨. 하늘에서 잘 있지? 거기서는 막 뛰어다니고 엄청 건강하지? 나는 잘 있어. 이다음에 하늘에서 다시 만나면 엄청 맛있는 수박 같이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