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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유니온 Nov 09. 2021

[들어가며] 만나러 가는 길

‘불안정하다’의 정의는 무엇일까? 사전에 의하면 ‘안정성이 없거나 안정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마치 비정규직의 정의처럼 ‘정규직이 아니다’와 같은 의미다. 그런데 갑자기 웬 불안정 타령일까? 그 이유는 이 책에서 만날 20명의 청년들 모두 각자의 ‘불안정’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학력이고, 같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른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었다. 불안정의 사전적인 정의와 20명의 청년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불안정함에는 일정한 전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모두 불안정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추상적이지만 ‘의지할 무언가’, ‘되돌아올 중심’이 없는 사람들이 불안정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청년유니온은 2021년 5월부터 청년들의 불안정한 노동에 대해 주목했다. 그 이유는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청년들의 노동현장에 당사자들의 이야기보다는 수치와 통계로만 도배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불안정한 청년’, ‘불안정한 노동’같이 청년과 노동 앞에는 어김없이 불안정하다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글과 영상으로 남겨야 할 필요성을 체감했다. 코로나19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청년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청년유니온 SNS를 비롯한 각종 청년 관련 그룹에 인터뷰 참여자 홍보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지역, 성별, 나이, 직업, 학력까지 다양한 영역의 20명의 청년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 


청년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어떤 청년’을 만날 것인지 고민했다. 모두가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한정된 시간과 자원 내에서 누구를 만날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분야는 물류센터였다. 코로나19 이후 대기업 신규 채용보다 물류센터 채용이 더 많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물류센터로 향했다. 그리고 초단시간으로 일하며 소득도 생활도 불안정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코로나 때문에 휴직을 하거나 해고를 당한 청년들, 사회보험을 가입할 수 없어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 종사자들까지 여러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20명의 청년들을 만나기 직전까지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고민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해와 어려운 상황만 듣고 싶지 않았다. 현재 하는 일을 선택한 이유와 과정을  듣고 싶었다. 현재 생각하는 일과 노동의 의미를 정립하게 된 배경을 듣고자 했다. ‘부당한/좋은 일 경험이 다음 일자리를 선택할 때 미친 영향’에 대한 질문은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가정형편과 가족관계, 진로와 학업 선택 배경, 일 경험과 이력, 미래 전망까지 생애 전반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직업과 노동의 분야를 막론하고 각자의 고유한 노동 경험을 듣게 됐다. 학사 학위가 없어 30대 이후 스펙을 고민하는 청년들의 노동, 직업교육을 받지 못해 일자리를 떠돌며 몸으로 부딪히며 일을 배운 청년, 갑작스러운 사고로 진로를 변경하고 살길을 찾는 청년, 개인적인 상황으로 구직을 포기한 시기를 경험한 청년이 있었다. 


동시에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대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분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되 불쌍하게 여기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참여자가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도록 진행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고민의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 혹은 과도한 고민과 준비였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인터뷰 참여자들은 덤덤하면서도 유쾌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을 이야기할 때는 표정이 울적해지기도 했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을 상상하는 표정에서는 밝은 기운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마냥 침울한 것이 아니라는 점, 복잡 미묘한 심정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촬영 담당자와 쉬는 시간에 무수히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 내용이 잘 나왔는지, 영상은 잘 찍혔는지부터 우리의 노동 경험과 진로 선택에 있어 고민했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참여자와 인터뷰를 하며 우리의 경험과 고민을 떠올렸다. 다음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짧은 휴식 시간,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모든 이야기들이 여운이 남았다. 인터뷰 현장에서 우리가 느낀 감정과 상념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과 영상을 보는 분들이 자신의 노동 경험을 떠올리고, 진로를 선택했던 시기를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경험과 좋지 않은 경험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불안정하다는 것의 정의를 다시 생각했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자신의 생애에서 진로의 중요한 시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다. 참여자 중 한 명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한 명만 있었으면 자신의 방황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안정하다는 것은 결국 마음 둘 곳이 없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마음 둘 곳이 없으니 다시 불안정한 삶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도 수많은 청년들이 마음 둘 곳 없이 없어서 일자리를 배회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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