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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유니온 Nov 09. 2021

갈 곳이 없었을 때 향한 곳, 물류센터

코로나 시국에 물류센터로 모인 청년들


살면서 한 번 즘 갈 곳이 없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목적지를 잃었다는 생각에 방황하고, 막막한 마음에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리고 다시 살아갈 목적을 찾고 밖으로 나와 무언가를 시작한다. 물류센터는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일자리, 마지막 안전망 같은 곳이었다. 매일매일 구직사이트에 올라오는 공고, 매일매일 일할 자리가 있다는 매니저의 말에 물류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기 어려운 나의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리고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물류센터는 그런 곳이 아닐까.



Q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지금은 창업과 물류센터 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Q :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경영컨설턴트 일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 일했던 대표님하고 임금체불 문제가 있어서 그만두게 됐어요. 그리고 한 동안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었어요. 그리고 다시 생활을 유지해야겠다 싶어서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대기업 물류센터에 있는 상하차 일을 했어요. 


Q : 상하차 업무는 오래 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A : 맞아요. 조금 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일 하는 분들끼리 싸움도 많이 나고, 언행도 거칠어요. 조금만 실수하면 욕부터 하는 문화도 분위기도 적응할 수가 없어서 오래 못했어요. 하루 일하면 하루 쉬고, 다음날 일하면 그다음 날은 쉬어야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Q : 그런 분위기였으면 무서웠을 것 같아요.

A : 무섭죠. 무서운 것도 있었는데 그때는 제 현실에 대해 생각했어요. 내 인생이 망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어요. 이런 생각들을 이겨내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물류센터에서 일하면 생활 패턴이 단순해지거든요. 제가 새벽 근무였거든요. 현장에서 일이 끝나면 새벽에 버스 타고 집에 오고, 씻고 자고 일어나면 오후가 돼요. 그러면 다시 출근할 준비를 하고요.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까 기계처럼 일하게 되는 느낌이에요.                         


Q : 밤낮이 바뀌는 생활이면 수면의 질도 안 좋았을 것 같아요. 

A : 맞아요. 잠을 잘 못 자요. 그래서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는 근처 찜질방에서 자면서 지냈어요. 근무하는 곳과 집이 너무 멀어서 이동시간이 오래 걸렸거든요.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근처에서 자고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했었어요. 1년 정도를 다녔던 곳인데 왕복 5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래서 찜질방에서 자는 게 더 편했어요. 


Q : 새벽 근무를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A : 밤에 시작하는 타임이 돈을 제일 많이 줘요. 그리고 제가 일했을 때는 조기출근이라는 개념이 있었어요. 원래 출근 시간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하는 걸 조기출근이라고 해요. 조기 출근해서 마감할 때까지 일하는 거예요. 그러면 밤 12시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일을 하는 거죠. 그러면 거의 20시간 일을 하고 25만 원 정도를 받아요. 어차피 물류센터에 가서 일하면 하루를 날리는 건 똑같으니까 그럴 바에는 돈을 더 벌자는 마음인 거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일 했었어요. 


Q : 여러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신 것 같아요. 

A : 맞아요. 지금 일하는 곳은 그래도 편한 축에 속해요. 어떤 곳은 일하는데 쉬는 시간을 식사 시간 빼고는 안 주거든요. 일하는 능률을 수치로 표현하는 제도도 있었고요. 그래서 능률이 낮으면 방송으로 ‘몇 번 사원님 빨리빨리 하세요’라고 말해요. 상하관계가 상당히 심한 것도 있어서 거기는 그만두고 지금 있는 곳으로 왔어요. 


Q : 일하면서 차별을 겪은 적이 있을까요?

A : 현장에서 똑같은 일용직으로 일하는데 완장을 달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같은 계약인데도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거죠. 그분한테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다음 날 출근을 못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출근할 사람을 관리하는 일을 하거든요. 저희 같은 일용직한테는 다음날도 일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되게 중요하거든요. 제가 있던 곳에는 퇴근하기 전에 다음날도 일을 할 건지 미리 말하고 가거든요. 그런데 문제제기를 했다고 다음 날 출근하라는 메시지가 안 오는 거예요. 


Q :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이곳에만 있는 문화라고 느꼈던 것이 있을까요?

A : 소문이 되게 빨리 퍼져요. 누구, 누구랑 사귄다는 것도 빨리 퍼지고요. 누가 누구를 욕했다는 것도 소문이 퍼져요. 소문이 그대로 도는 것도 아니고요. 이게 하루 패턴이 너무 단순하니까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기서 재미를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Q : 일을 하면서 개인의 생활에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A : 인간관계가 좁아졌어요. 원래 친구들도 많이 만나는 성격이었는데 물류센터에 다닌다고 하는 것 자체를 친구들한테 알리기 싫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다 회사 다니고 있는데 나는 배신을 당해서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거든요. 그래서 친구들도 만나지 않게 됐어요. 


Q : 배신을 당하셨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A : 제가 대학교를 자퇴하기 전에 계셨던 교수님이었어요. 그분께 경영 컨설팅을 배웠어요. 제가 집안 형편도 어렵고 간절하다는 걸 알고 계셔서 제 상황을 이용하셨어요. 물론 어린 나이에 할 수 없는 좋은 경험도 많고 경력을 쌓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 나이에는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이유로 돈을 주지 않는 거예요.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게 있는데 돈을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최소한의 생활도 안 될 정도로 돈이 없었어요.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떠났죠.


Q : 당시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A : 기업이 갖고 있는 문제를 경영의 관점에서 컨설팅해주는 일이었어요. 문제를 조사하거나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을 하는 거죠. 이 일을 하루 종일 했어요.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16시간일 때도 있었고요. 사무실 소파에서 먹고 자고 그런 식으로 살았어요. 심할 때는 집에 일주일 동안 들어가지도 못 하고요. 그런데 제대로 된 월급은 한 번도 못 받았어요. 받아 봤자 60만 원이었어요. 


Q : 그래서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오신 건가요?

A : 맞아요. 컨설팅 일을 하다가 갑자기 제 위치가 확 내려간 기분이었어요. 그 차이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물류센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어요. 내가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었어요. 


Q : 그 후에 물류센터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떻게 느껴졌나요?

A : 물류센터에서 일한다는 게 좋은 경험 같지는 않아요.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요. 담배만 피우게 돼요.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안 좋고요. 그 공간에서 해소할 수 있는 게 담배밖에 없으니까 피는 양만 늘어가고요. 저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Q : 같이 일했던 분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것 같아요. 

A : 맞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했어요. 저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 보다 더 힘들게 지냈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곳에서 배웠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이 아니었구나 생각했죠. 2년 동안 물류센터에서 일할 수 있었던 동기는 배신감에 대한 오기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버틴 측면도 있었어요. 


Q : 현재 생활은 불안정하다고 느끼나요?

A : 지금도 불안정하다고 느껴요.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다음 날 근무 신청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생각하고요. 오늘도 일을 신청했는데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빨리 안정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하죠.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어서 지금 창업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많은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경진대회 나가서 상금을 타서 돈을 메꾸기도 해요. 


Q : 창업을 준비하는 건 두렵지 않으세요?

A : 창업을 하는 건 가장 후회 없는 선택이었어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어요. 취업을 준비하는 것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살면 ‘내가 즐거울까?’ 싶었어요. 예전에 당한 열정 페이 경험도, 물류 세터에서의 경험도 회사의 부품이 되어 일하는 거였거든요. 이런 삶이 허탈하게 느껴졌어요. 하루에 3시간씩 창업을 준비했는데, 그 시간이 저한테 제일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었거든요. 


Q : 창업을 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게 있을까요?

A : 당연한 이야기지만 근로시간을 잘 지키고 싶어요. 저는 사람들이 제 회사에서 평생 일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면 일하실 분들이 다음 일자리, 이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다음 일터를 꿈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드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물류센터 현장에서는 꿈조차 품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제 회사에서는 신경 쓰고 싶은 부분이에요. 




※ 인터뷰 참여자의 익명성 보장을 위해 개인 정보와 신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편집 및 각색했습니다.


※ 인터뷰의 문장은 참여자의 말투와 사용하는 단어의 어감을 살릴 수 있는 문장으로 편집했음을 밝힙니다.


※ 본 인터뷰는 서울시의 <청년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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