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유니온 Nov 09. 2021

어딘가는 꼭 아프게 되어있는 일

코로나 시국에 물류센터로 모인 청년들


‘결리다’, ‘뻐근하다’, ‘아프다’, ‘쑤시다’를 가장 많이 쓰는 노동자는 누구일까? 몸을 사용해서 일하는 다양한 현장의 노동자들이 사용할 표현이다. 그리고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마찬가지로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현장, 물류센터가 바로 그 현장이다. 무거운 물건을 반복적으로 들거나 옮기거나, 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고, 같은 근육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자주 겪는 질환이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다. 어딘가는 꼭 아프게 되는 일터, 물류센터 노동을 경험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Q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 안녕하세요. 부평구에 살고 있습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물류센터에서는 포장이나 분류, 상하차 같은 일을 했어요. 


Q : 물류단지, 센터에 처음 들어갈 때 기분이 어떤가요?

A : 압박감 같은 게 있어요. 내가 여기에 들어가도 되는 건가? 오길 잘한 걸까? 같은 생각을 하게 돼요. 그리고 건물들이 엄청 크니까 거기서 오는 위압감도 있어요. 오늘 일은 잘 마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Q : 물류센터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 : 일단 물류센터 일자리가 구하기가 쉬웠어요. 구직 사이트만 봐도 제일 많이 올라오는 게 물류센터 일자리였고요.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것도 있었어요. 업무 자체도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시작하게 됐어요. 


Q : 상하차 업무를 할 때는 허리 같은 곳이 아프지 않나요?

A : 아프죠. 녹초가 돼요. 그런데 물류센터에서 일하면 어떤 일을 해도 어딘가는 아프게 돼있어요. 상하차를 하면 허리가 아프고요. 물건 나르는 일을 하면 다리나 발이 아프고요. 포장을 하면 손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요. 같은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하니까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신체가 아프게 돼있어요. 


Q : 일하는 공간에 사람들과 지게차가 같이 움직이나요?

A : 맞아요. 지게차 동선과 사람들이 물품을 나르는 동선이 겹쳤어요. 제가 있던 곳은 생각보다 많이 좁거든요. 물건이 많이 쌓이면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게 돼요. 그 공간에서 지게차가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안에 신호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눈치껏 피해야 되는 거죠. 관리자들이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위험한 거 맞으니까 알아서 잘 피하고 조심해라’라고 말해요. 


Q : 일하다가 다친 적도 있으세요?

A : 다른 곳에서 포장 업무를 할 때였어요. 그때 했던 일은 랩핑이라고 물건이 쓰러지지 않도록 랩으로 고정하는 일이었는데요. 제 뒤쪽에 자키라는 짐을 옮길 때 쓰는 물건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짐을 옮기는 과정에서 자키를 건드렸고, 그게 제 발목 뒤꿈치를 친 거예요. 차 운전하시던 분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비를 주시면서 병원에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크게 다친 건 아니어서 소독만 하고 나왔죠.


Q : 그때 다친 건 산재 처리가 되었나요?

A : 아니요. 병원에 갔다가 팀장님한테 갔어요. 당시 일했던 곳이 공공기관이었는데요. 산재처리하려면 절차가 있고,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장 어떻게 하자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설명을 듣고 그냥 제가 병원 가서 자비로 치료했던 기억이 있어요. 


Q : 물류센터에 냉난방 시스템이 열악하다고 들었어요.

A : 제가 일했던 곳에는 냉방시스템이 있었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류창고에 차가 계속 들어와야 하니까 차고 문을 열어놓거든요. 그러면 에어컨을 틀어도 찬바람이 밖으로 나가서 더운 건 똑같아요. 겨울에도 마찬가지로 난방을 틀어놓아도 밖에서 찬바람이 들어오니까 추워요.


Q : 코로나 때문에 택배 물량이 많이 증가했다고 들었어요.

A : 맞아요. 코로나19 전에 비하면 물량이 많아진 것 같아요. 이게 물량이 많아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있어요. 하나는 연장근무가 많아졌는지, 또 다른 건 일 하는 사람이 많아 증가했는지, 두 가지로 판단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구직사이트만 봐도 근무 시간을 많이 요구하는 곳이 늘어났어요. 그렇게 보면 확실히 물량이 많아졌죠.


Q : 일하는 사람도 자주 바뀔 것 같아요.

A : 네. 자주 바뀌죠. 계약직으로 들어오시는 분이나 정직원으로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면 오래 못하고 나가시더라고요. 길면 한 달 정도 하시는 것 같아요. 물류 일이라는 게 오래 하기 힘든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지금 일하는 곳은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다니고, 직원은 지원끼리 다녀서 서로 대화를 하기 어려운 문화가 있어요. 왜 이렇게 돼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Q : 지금 생활에 만족하시는지 궁금해요.

A : 이렇게 하루 이틀 일하러 나가는 게 좋은 것 같지 않아요. 제가 시간 날 때마다 나가고 있는데, 다른 일을 안 하는 것보다 가능한 선에서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어요. 여기가 아니라 괜찮은 곳이 있으면 가고 싶은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물류센터에서 일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중에는 정말 열악한 사람도 많이 봤거든요. 그러면서 이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 의문도 들어요.


Q : 물류센터의 분위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영향을 준 것이 있나요?

A : 명확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여기는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다시 뒤 돌면 생각나는 게 물류센터예요. 이 일만큼 구하기 쉬운 일도 없고요. 내가 일할 수 있는 날에 출근해서 일하면 된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거든요. 


Q : 구직사이트에 있는 공고랑 일하는 현장에서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A : 사이트랑 현장이랑 거의 다 다르다고 봐요. 구직사이트에서는 단순한 일이라고 하지만, 편한 일은 아니거든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일정 기간은 숙련이 돼야 하는데,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한테는 숙련도를 쌓을 시간이 없었는데도 빠릿빠릿하길 원해요. 그렇게 빨리빨리 일 하기를 원하는데, 그러다가 사고가 나거든요. 


Q : 일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을까요?

A : 보람이요? 하루치 일이 끝났다고 느꼈을 때가 가장 기분 좋고 보람찬 것 같아요. 오늘 할 일을 끝냈고, 이제 쉴 수 있다는 해방감 같아요. 이런 마음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내가 누구한테도 터치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홀가분함, 그런 느낌이 있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 앞으로의 계획이 있을까요?

A : 외국에 나가서 사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 외국에서 생활해본 적이 있는데요. 한국에서 사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저는 제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보다 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살 때 보다 외국에서 살 때가 더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외국으로 나갈까도 고민하고 있어요. 



※ 인터뷰 참여자의 익명성 보장을 위해 개인 정보와 신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편집 및 각색했습니다.


※ 인터뷰의 문장은 참여자의 말투와 사용하는 단어의 어감을 살릴 수 있는 문장으로 편집했음을 밝힙니다.


※ 본 인터뷰는 서울시의 <청년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갈 곳이 없었을 때 향한 곳, 물류센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