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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또 Feb 13. 2016

나는 얼굴이 없습니다.

볼리비아의 구두닦이 - 볼리비아 판 <빅이슈> 팔아 희망을 사는 사람들

이것은 검정 방한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캡모자로 눈빛마저 가려버리는 3500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에서 살아가는 가장 낮은 사람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LaPaz)의 구두닦이다.


소금사막에 우기가 찾아오면 우유니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된다.

2013년이 시작할 무렵, 볼리비아를 방문했다. 자연의 거울이라 불리는 우유니 사막으로 유명한 국가.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자락에 위치한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는 해발고도 약 3600m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이다. 수도가 가장 높은 곳에 있지만 1인당 GDP는 세계 100위권에도 못 드는 수준.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난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 라파스 전경. 저 멀리 만년설이 보이시는지.

수도 라파스를 돌아다니다가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검정 방한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앞이 보일까 우려될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바닥에 철퍼덕 앉아 다른 사람의 구두를 닦고 있는 구두닦이였다.

당시 직접 찍은 구두닦이

범죄자인 줄 알았다. 아니면 얼굴에 심한 상처라도 있어서 가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저런 차림을 한 구두닦이는 한둘이 아니었다. 당시 가이드를 하던 분께 묻자, 이렇게 대답해주셨다.

볼리비아에서 구두닦이는
매우 천대받는 사람들이에요.
가장 빈곤하고 천한 계급이죠.
얼굴이 드러나면 조롱받기 때문에
모두 복면을 쓰고 일해요.


사람들은 구두닦이들을 범죄자,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 게으름뱅이로 여긴다. 전혀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극도로 빈곤한 환경에서 거리로 몰린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많은 구두닦이는 아주 어릴 때-8살 혹은 10대 초반부터 일을 시작한다. 한번 구두를 닦으면 약 30센트(약 360원) 정도 번다.(길거리에서 먹는 생선요리가 약 2200원이라고 한다.)

어린 구두닦이
구두닦이로 일하는 아이들은 고아거나, 폭력적인 가정보다는 차라리 거리를 대면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아이들이다. <BBC 뉴스기사>

가정을 잃고 학교를 자퇴한 아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BBC 뉴스는 환각제에 빠진 Luis Sanchez를 인터뷰했다. 그는 15살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돈을 어디서 구할지 몰랐어요. 친구가 구두통을 빌려줬어요.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자퇴하고 마약을 시작했죠. 조금씩 멈추려고 했지만 어려웠어요. 마약에 취해있는 순간엔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이지 않거든요.
성당 앞 광장의 구두닦이. 두번째 남자 머리 옆으로 보이는 가로등이 이전 사진에서 필자가 직접 구두닦이를 찍은 곳이다.  

구두닦이는 얼굴을 내보일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얼굴을 보이고 존재를 인정받는 순간부터 무시당한다. 그래서 구두닦이는 스스로를 차별로부터 지키기 위해 복면을 쓴다.

언제는 잘 차려입은 한 여자가 나에게 "이 게으른 자식. 왜 직업을 갖지 않니?" 라고 물어봤어요. 가장 마음이 아픈 건 내가 구두를 닦거나 사탕을 팔 때 사람들이 나에게 왜 직업이 없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The Gardian 인터뷰, 33세 Juan José>

구두닦이 Javier Mamami의 장모는 여전히 그가 구두닦이인지 모른다. 다음은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내 아들은 항상 나에게 왜 얼굴을 가리는지 물어봐요. 나는 "이웃들이 날 보면 "구두닦이!" 라고 소리치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보는걸 원치 않기 때문이야." 라고 대답합니다. <BBC 뉴스, 31세 Javier Mamami>
얼굴없는 구두닦이

구두닦이의 삶은 구조적인 악순환이다. 구두를 닦아 손에 쥐는 돈은  터무니없이 작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벅차다. 어엿한 노동자지만 사회는 그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교육의 기회도 없다. 하루 종일 복면을 쓰고 매연을 마시며 땅을 보며 일한다. 희망이 없다. 그들은 점점 사회가 찍은 낙인처럼 범죄자, 거지, 게으름뱅이로 변해간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그들의 얼굴은 인정받지 못한다. 


신문을 팔고 돈을 벌기 시작한 구두닦이

최근에 구두닦이들의 삶에 한줄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빅이슈> 처럼 이들에게도 <Hormigón Armado>라는 신문이 생긴 것이다. 두 달마다 6000부가 발행되어 60여 명의 구두닦이들에게 배분되면 그들은 신문을 한 부당 우리 돈 약 700원에 팔고 75%의 수익을 가져간다. 나머지 25%는 구두닦이와 거리 노동자를 위한 건강보험금이 된다. 신문을 판매한 수익으로 구두닦이들은 음식을 사고, 집을 구하고, 교육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던가. 신문을 배분받는 구두닦이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인권, 성교육 등에 관한 워크숍에 참석해야 한다.

이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한 Jaime Villalobos는 영국에서 유학 중에 <빅이슈>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재단은 신문뿐만 아니라 구두닦이들이 안내하는 라파스 투어와 도심농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얻은 수익금으로는 길거리 아이들에게 교육과 건강관리를 지원한다. 그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Hormigón Armado>는 그 이름처럼 (Hormigón Armado : 철근 콘크리트) 차별과 빈곤의 단단한 벽을 깨부수고 그들의 삶을 단단하게 일으켜 세우고 있다.  


2011년, 라파스의 시장은 구두닦이가 "도시경제의 주춧돌, 품위 있는 직업" 이라고 선언했다. 비록 아직 3500여 명의 구두닦이 중 적은 수만이 <Hormigón Armado> 의 혜택을 받지만 그들이 교육을 통해 악순환을 끊고, 자존감과 건강을 되찾는다면 언젠가 볼리비아의 구두닦이가 더 이상 얼굴을 가리지 않을 날이 오리라.

해와 가장 가까운 수도, 라파스의 구두닦이가 햇볕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날. 너무 정면으로 받아서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참고로  <Hormigón Armado> 에 들어가면 과거 신문의 pdf를 볼 수 있다. <Hormigón Armado>의 창립자 Jaime Villalobos의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언젠가 볼리비아에 가게된다면 그의 말을 꼭 기억해주시길!

당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커서 바람직한 어른이 될 수 있지만 거리의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힘듭니다.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 위험을 최대한 줄여서 아이들이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서 인정받는 일을 하기 바랍니다. <The Gurdian>
희망꽃 피우길.

마지막 사진 출처 : latinchattin.com

우유니 사막 사진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nicokaiser

라파스 전경 사진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b00nj

어린 구두닦이 사진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bbarboza

광장 구두닦이 사진출처 : http://www.pirancafe.com/2014/02/04/shoeshiners-la-paz-pic-du-jour/

얼굴 없는 구두닦이 사진출처 : https://www.behance.net/gallery/426502/Lustrabotas-Shoe-Shine-Boys-of-La-Paz-Bolivia

신문을 파는 구두닦이 사진출처 : theracontourismblog.wordpress.com

공부하는 사진, 관광객과 찍은 사진출처 : http://hormigon-armado.wix.com

자료 및 사진 출처 : BBC NEWS, thegurdian, CCTV America 

볼리비아 물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Hormigon Armado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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