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간다 포르투갈
2023년 벼락치기를 하면서 결심했던 것 중 하나. 포르투갈 여행에서 기록했던 일기를 다시 옮겨보기!
어디든 여행을 다녀와본 분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여행지에서 쓴 글이야말로 나의 모든 있는 감성 없는 감성을 그러모으기 마련인데, 그래서 이걸 그대로 옮긴다는 게 좀 쪽팔리긴 한데, 그래도 생색내본다. 2주 다녀왔지만 마치 몇 년은 지내다 온 것처럼.
**퇴사 후 새 직장으로의 첫 출근을 앞두고 떠난 마드리드x포르투갈 여행 일기를 다시 옮겨씀
대략 4년 반 만에 다시 유럽을 간다. 여행으로 가는 건 7년 만이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을 갔던 것도, 헝가리에 출장 취재를 갔던 것도 둘 다 꽤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 사이에 나는 많이 변했나?
..하면 어느 측면에서는 스스로 예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겪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지독하게 한결같다.
얼굴은… 그대로였으면 좋겠는데 최근에 00년생 동료를 보니까 확실히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는 듯. 성격은… 많이 유해진 것 같은데 그 무딤이 정말 좋은 것인지는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평소에도 그렇고 여행을 갈 때도 그렇고 Across the Universe라는 노래에서 많이 위로를 받는다. 그 중에서도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라는 가사를 좋아한다. 나의 어떤 부분은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을 하든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뭐가 있을까…
(누가 들으면 웃겠지만) 소수의 감성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대로 “가끔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사해 하자”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행 다녀와서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자. 좋아하는 글을 읽고, 머리를 쥐어짜내든 가볍게 지껄이든 그걸 기록해두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자. 좋아하는 것을 어떤 이유에서든 그만두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다. 여튼 그것을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너무 어리다 내가.
변했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왜 난 “그러려니”가 안 될까? 혹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의 마인드.
원래는 可愛(*대학교 초급 중국어 시간 때 배운 단어 ‘크어아이’. ‘귀엽다’는 뜻인데 내 마음대로 한자만 갖고 ‘사랑함직하다’라고 해석해왔음), 누구에게든 사랑함직한 특징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너무 어렵더라. 그냥 나에게 박애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사람에 대한 기대도 어느 정도 내려놓고, 둥둥 떠 있는 자기부상열차처럼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땅에는 안 닿아 있지만 둥둥둥둥 산뜻하게 떠가는 열차처럼. (가능할까?)
여튼, 지금은 경유지인 상해로 가는 중이고 절대 잠이 들면 안 된다.
이따 장장 열네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려면 자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푹 잤더니 일곱시간이 훅 지나가 있고, 남은 시간 동안 나는솔로 16기 정주행이다 하다가 내리는, 그런 기적이… 찾아오기를…
일단 기내식 먹어야지!
(비행시간 한시간 반인데도 기내식 주는 중국동방항공. 오해해서 미안해, 마드리드까지 잘 부탁한다)
(잘 자고 일어남)
후… 드디어 열네시간 비행도 끝을 보인다.
원래는 허리도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돈을 좀(??) 얹어서라도 비즈니스를 타볼까 생각했는데 아냐… 이코노미 타기를 잘했다.
내가 절대적으로 고소득자인가…?
그건 좀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연봉이 많이 오르고나서부터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소비 규모가 이전과 믾이 달라지고나서부터는 돈을 쓰는 데 있어 별 거리낌이 없어졌다. 재테크도 안 하고, 한 달에 정확히 얼마 모으는지도 모르고, 식비에 옷에 그냥 돈이 술술술 새어나간다. 이제 이렇게 살면 안 되려나…?
그런데 결혼 생각도 당장 없는 내가 돈 몇백마원이 더 있으면 그걸로 뭘 할 수 있나 싶기도 하다. 그냥 기분 좋게 얼마를 모았다는 감각 정도… 하지만 정작 배우자는 재테크에 어느 정도 꺠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개그포인트… 그러면서도 돈에만 갇히지 않은… 내가 적어도 좀 지랄이긴 한 것 같다.
갑자기 직장 생각.
왜 옮겼냐 하면… 사람. 이게 정확하겠다.
OO(*전 직장)에서 소모된다 싶을 때 좋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힘을 얻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많이 의지하는 만큼 ‘나 자신’에 대한 감각은 많이 잃어버렸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들과 모난 부분 없이 매끄럽게 대화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이들이 더 날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 등등… 물론 내가 너무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이들 덕분에 꽤나 관계지향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뿌듯하게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좋아하느냐는 건 많이 잊어버린 게 사실이다.
리바운드의 정신으로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길은 나올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잊지 말자. 나는 나를 잊지 말자.
별개로, 중국동방항공 승무원 언니가 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다. 그럴 수 있지. 근데 졸다가 깨서 나와 눈이 마주쳐도 전혀 민망해 하지 않고 또 눈을 붙인다. 참 중국이라는 나라는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