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으로 들어온 풍경26

삶이 무겁다

by 윤재훈


매트로 역 앞 지하도

검정 정교회 복장을 하고

허리가 90도로 굽어진 노인

구걸을 한다.

그의 초라하고 기괴한 모습에

적선들을 많이 한다.

한 번도 허리를 펴지 못하는 노인

살아온 생이 그렇게

굽게 만든 모양이다.


오늘 적선된 가방을

유심히 내려다보는 노인

이윽고 구걸을 끝낸다

90도 굽은 허리에 걸맞게

짧막한 지팡이를 지고

ㄱ자로 걷은 그의 걸음걸이,

세상도 그렇게 굽어보인다.


유난히 더듬거리며 걷은 모습이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너무 더디다

노인은 앞도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앞에는 10여 계단 지하도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그 길이

노인에게는 천 길 낭떠러지 같다


모두들 바삐 걸어가는 심야深夜

중절모를 쓰고 유심히

노인을 바라보는 청년 하나

기어코 노인에게 다가가더니

부축을 하고 내려간다.


띄엄띄엄 슬로우비디오가

정지 화면이 된다

기어코 아래까지 부축하고 내려온 청년

못내 미덥지 않는지 가지 않고 지켜본다

행여 그에게도 고향집에 노친老親이라도 계시는 걸까

아니면 그는 유난히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일까


노인은 다시 건너편 계단을 오를 모양이다

청년은 바닥에 얼어붙은 듯

걸음을 옮기지 못하더니,

다시 노인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른다

어둠침침한 그 뒤로 커다랗게 복福자가

써 지는 듯하다


지하도에서 다 올라온 청년

그제서야 한 시름 놓았다는 듯

파랑파랑 천사되어 날아간다

눈시울이 뜨꺼워진다

그와 뜨거운 차 한 잔

하고 싶다


노인은 계단을 올라오자 말자

바로 그 옆에 앉아

다시 구걸을 시작한다

생활화 된 구걸

숙업宿業이 깊어 보인다.

이생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쌓아야 할 텐데


자유 광장 타워 위 황금 동상

저 홀로 야경을 받아

빛나고 있다.


노인은 자울거리더니

옆 기둥에 기대여 잔다

혹여 그는 꿈길에서

고향집 어머니라도 만나고 있을지 모른다.

-조지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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