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여행이다4
-세계여행을 떠나며1
인도와 네팔의 히말라야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15여년이 지나도록 꿈만 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혹시, 여권이라도 준비해두면 기회가 찿아오지나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여권을 만들었다. 그나마 여권이라도 손에 쥐니 뿌듯했다. 금방이라도 여행을 떠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3개월 후, 요란한 중국인 보따리 장사꾼들 틈에 끼여 정말 거짓말처럼 인천항에서 단동으로 떠니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단동항에서 내리니 셔틀버스로 단동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하나 둘 사람들은 다 떠나가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바람 부는 단동역에서 전봇대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잠시 후 봉고차 문이 열리고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왔다는 청년들, 사정 이야기를 했지만 여름 봉사하러 온 학생들을 태우더니 이내 그들은 사라져 버렸다.
여행서에서 봐두었던 호텔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곳은 이미 없어졌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호텔들은 배낭 여행자가 묵어가기에는 너무 비쌌다. 오직 몇 년 지난 여행서에만 의존해서 왔는데, 현지의 사정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어 한 이틀을 묵으면서 맷집을 키울 수밖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국인들을 만났지만 별 도움이 안됐다. 이상했다. 바로 옆나라에서 만난 동포들은 무척 배타적이였으며 서로 경계의 눈빛만 보낼 뿐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떠나온 여행,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수밖에,
어떻게 해서 저렴한 호텔로 방을 옮겼다. 한숨을 돌리니 나니 가장 먼저 우리 동포들을 만나고 싶었다. 낯설은 이국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의 내밀한 삶의 모습이 궁금했다. 압록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의 극악한 탄압과 궁핍에 견디나 못해 중국으로 시베리아로 국경을 넘었을, 그들의 곡진한 슬픔들이 궁금했다.
<단동> 새벽시장, 따뜻한 해장국에 언 몸을 녹이며 생계를 이어가던 동포들, 잔 수풀에 둘러싸여 이제는 현지인들이 앉아 담배를 피우다 꽁초나 버리고 가는 장소로 전락해버린 찬란했던 고구려의 성터, <지안>,
온 시내의 간판들이나 나풀거리는 현수막들이, 심지어 버스정류장의 표시, 음식점의 메뉴까지 정다운 우리 국어로 되어있던, 조선족의 고향 <연변>, 해란강에 윤동주의 시가 강물처럼 흘러 다니던, 그리운 <용정>, 일송정가의 푸른 소나무. 우리 국토의 끝단, 민족의 성산 백두산, 그 아래 이도백하 마을, <심양>의 동포시장. 그렇게 우리와 같은 성씨를 가진 피붙이들의 흔적을 찾아 옛 만주 땅을 바람처럼 떠돌다,
수많은 동포들을 만났다. 그들과 맺은 인연들은 두고두고 나에게 소중하게 남아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며,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베이징에서 푸른 초원의 나라, 몽골로 가는 국제열차 표를 사기 위해 역으로 갔다. 그런데 기차표를 사는 것이 마치 전쟁통 같았다. 우선 사람들의 거대한 규모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갈지(之)자 형태로 그 넓은 광장을 꽉 채운 줄은 도무지 입구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 듯했다.
요행히 역 안으로 막 들어가자 공항처럼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조금만 과일칼이나 가스통 등은 전부 압수였다. 그리고 역사 안은 소매치기 천국이었다. 휘 둘러본 내부 풍경은 심란했다. 여기저기 바닥에 박스 같은 것들을 깔고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사람들. 깊은 산속에서 만난 짐승들의 눈처럼 경계의 눈빛들이었다.
배낭을 몸 앞으로 메고도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창구 앞에서는 더욱 힘들었다. 아예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한문 글자를 써가며 표를 사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표를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여기서 팔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는 듯했다.
어떻게 해서 10여분 이상 걸어가니 세상에, 호텔 안에서 국제열차표를 팔고 있었다. 어찌 호텔 안에서 표를 팔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어렵게 표를 구했는데도 다음날 기차를 타는 것도 사는 것 이상 힘들었다. 커다란 트렁크와 배낭을 메고 똑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열차 안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트렁크는 안으로 들어갈 때가 없어 화장실 옆에 두었는데 가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의자에 앉자 이제는 중국 땅이 되어버린 내몽골의 초원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시름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자, 이제 모두 잊고 새로운 땅을 향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