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여행이다5

-세계여행을 떠나며2

by 윤재훈


내 삶은 여행이다5

-세계여행을 떠나며2

바람, 구름, 초원의 땅

그 땅을 찾아가기 위해 서해를 건너온

한 사내가 서 있다


베이징 역, 인산인해의 틈바구니에서

홍조 띤 얼굴을 하고 그가 시간을 가늠한다

철길만 외로이 벌판에 길을 내고

그 끝은 어디에 닿아있는지 아득할 뿐이다


사내가 다시 손차양을 하고

무엇이 그리운지 동쪽을 본다

저 해무가 걷히면 아련한 그 나라가

이어도처럼 떠 있을 것이다


끝없이 달리는 푸른 구릉들

그 지평선 위로 오르는 구름들은

저마다 미완의 꿈들을 피워 올리는지

바람 속에서 가볍게 몸피들을 부풀리고 있다


길을 달리는 건

오직 철마와 끝이 보이지 않은 전신주뿐

그리고 낮은 구릉들 사이로 언뜻언뜻 달리는

푸른 늑대 한 마리를 보았다


말발굽 소리도 이미 잦아든 지 오래인

이 푸른 대륙에

이 길의 끝은 도대체 어디쯤 가 닿아있을까

잠도 자지 않는 빙하가 365일 흘러내리는

천산 산맥 중심부를 관통하고 들어가

잠들어 버렸을까

맘모스의 화석처럼


언뜻언뜻 보이는 게르들

오직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이 이 땅에서는

그늘을 만들 수 있다

신은 어찌하여 이 광활한 벌판에

이토록 작은 인류를 보내셨을까


사내가 문득 벌판에 서서 다시

해시계를 가름한다


길이 나 있다

광활한 초원 위로

난마亂馬하는 길들

저 길들은 도대체 모두 어디로 간단 말일까


주체할 수 없는 꿈들을 안고

저마다 한 길씩 잡아 떠나갔을까

구릉 사이로 늑대 한 마리 또 스친다


사내는 나지막한 구릉 정상까지 뛰어 올라가

손차양을 하고 초원을 바라본다

어디에도 늑대가 간 길은 없다

가벼이 몽골 벌판을 떠다니는 바람만이

초원을 핥고 다닌다


부드러운 곡선만이 아가의 둔부처럼

지평선에 누워있고

거대한 뭉게구름들이 포근한 엄마의 품처럼

능선들을 다독이고 있다.

-푸른 늑대를 찾아서/윤 재 훈


자정이 넘어 국경에 도착한 모양이다. 철로의 넓이가 달라지니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우선 역으로 나가 검문을 받고 다시 몽골 국경을 넘어 또 검문을 받고 초라한 면세점 가게가 나타났다. 주인은 자다가라도 일어났는지 눈빛이 게슴츠레했다.

정말 낯설은 도시 울란바타르, 푸른 초원의 나라. 그 벌판에는 따로 길이 없었다. 그냥 사람이 지나가면 길이 되었다. 사람들은 매일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길가에서 끝없이 팔던 마유주를 몇잔 마시고 약간의 취기와 함께 찾았던 국립공원 <테를지>,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고 간신히 건넜던 강, 어린 양고기를 통째로 썰어 달궈진 차돌을 넣어 익힌다고 하던 허르헉과 독한 술에 취하던 하룻밤, 게르 옆에 모닥불을 켜고 밤새 별을 보며 지새우던 밤, 물소리에 깨어나던 청량한 강가에서는 새벽부터 낚시를 하고 있고, 말을 타고 들판을 누비고,

몽골의 남자들은 만나면 서로 잡고 기운을 자랑하기 위해 씨름을 했다. 유목민족에게는 오직 힘만이 남자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자산인 듯했다. 어쩌다 게르를 만나면 그들은 반갑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며, 우리의 막걸리처럼 휘휘 저어 마유주와 딱딱한 유제품을 내주며 먹으라고 했다. 그 자그마한 게르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들

찬란했던 소련 제국의 턱 밑 바다 같은 호수, 하트칼 마을 <흡수골>까지의 여정, 다정했던 몽골인 부부, 이제 우리에게는 사라진 좁은 완행버스에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감내하며 올란바타르로 다시 돌아오던 1박 2일의 여정,

그 벌판에 그늘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름뿐이었다. 가도가도 짙푸른 벌판. 어쩌다 나오는 게르를 보며 저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려니 가늠할 뿐이었다. 11월이 되자 몽골의 벌판에는 벌써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 눈을 피해 몇 달 동안의 몽골살이를 정리하고 다시 중국으로 가는 국제열차에 몸을 실었다.

막고굴, 룽먼석굴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 중의 하나인 다퉁의 원강석굴, 나는 그 부처들의 크기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부처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마침내 중국의 성도, 베이징, 이제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로질러 나는 실크로드를 따라갈 것이다.

기차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창문은 올려져 있고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워대어 너구리굴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특유의 파열음으로 고래고래 악을 쓰듯 전화를 하거나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도저히 적응이 안되는 바닥에 가래침을 뱉는 사람들. 문 앞에 세워둔 트렁크는 걱정 되었지만 다행히 잘 있었고. 간이역에 도착하며 창 밖에서 악을 쓰며 물건들을 팔았다. 점포에서 물건을 사면 잔돈들은 던져 주었다. 아직 사회주의 물이 덜 빠져서 인가. 서비스 정신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여대생들은 너무나 친절했다. 나는 그녀들을 보면서 이 광활한 대륙의 미래를 가늠해 보았다.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다퉁,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10미터도 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붓다들이 줄지어 서있는 (원강석굴),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놀라운 옛도시, (핑야오 고성), 설명이 필요 없는 시안의 <진시황릉>, 시안, 두보의 고향 청두, 윈난으로 가는 길,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국경도시, 쿤밍. 하룻밤을 야간버스로 달려 나는 거대한 대륙의 국경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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