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란나왕국>의 수도1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 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
마침내 열하를 건넜다.
1482일 동안의 길 위의 삶,
노점 국수에 저가 도미토리를 찾아 헤매는 여행이었지만,
그 길은 나에게 크나 큰 길을 제시해 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낯선 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한없이 겸손해지고, 한없이 낮아져야 하는,
그래야 그들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진리를
길은 나에게 날마다, 자분자분 가르쳐주었다.
치앙마이에 산재한 5개의 빠두Pratu/gate
란나 왕국의 수도 치앙마이. 한때 독립왕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문화적으로 라오스와 강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고려나 조선과 비슷한 약 500년 정도 유지했던 왕국, 그 부침의 전란 속에서 출렁이다 사라져 버린 왕국. 그 성터 위에는 들꽃이 피고 새들이 앉아 노래하고 있다. 세월 모르는 관광객들은 그 아래에 잠시 머무르며 한담을 하다가 사라진다.
인근 치앙샌 지역에서 출생한 <망라이 왕>은 그 시절 인근의 12 지역의 지방 토호 세력들을 제압한 막강한 실력자였다. 그는 끊임없이 영토전쟁을 벌이며 테라바다 불교(상좌부 불교)의 독실한 신봉자가 되어 이 지역에 빛나는 황금 붓다 문명을 이룩하였다.
<왓 째디 루앙> 뒷뜰에 있는 란나의 사찰
1292년 왕족의 거주지로 세워져 1296년에 도시가 되었으며, 1558년 미얀마인들의 손에 무너질 때까지 <란나 타이 왕국>의 수도 역할을 했다.
그의 사후 어느 왕조처럼 집안 내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점차 주변의 아유타야나 수코타이 왕조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주변 정세도 파악하지 못한 그의 후손들이 아유타야를 침입하다 패퇴하고 속국이 되는 비운을 맞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버마에서 일어난 타웅우 왕국에 의해 치앙마이까지 빼앗기는 수모까지 당한다. 그러다가 태국 중부에서 일어난 시암 왕국의 <나레수엔 왕>의 지배하로 들어가더니 급기야 1775년 톤부리 왕조의 <피아딱신>에 의해서 멸망되고 만다.
치앙마이는 타이의 수공예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근처의 산재한 작은 마을들에서는 은세공, 목각, 도기(陶器)· 우산· 칠기 제조와 같은 수공예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지며, 동쪽의 산캄펭에서는 타이의 전통 견직물이 생산되기도 한다.
방콕에서 752㎞ 뻗은 철도의 종점으로 도로와 항공편을 통해 타이 남부지역과 연결되며, 국제공항도 있다. 타이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 순례지 중 하나인 수테프 산(1,658m)의 경사면 1,056m 지점에는, <프라타트 도이수테프 사원>이 있고 근처에는 왕의 별장인 푸삥궁전이 있다. 이 산은 타이에서 가장 높은 산 가운데 하나로시 주변에는 <푸이 산 국립공원(1만 6,000㏊)>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인근 좀통이라는 도시로 가는 길목에는 타일랜드에서 가장 높은 도이(山) 인터논이 우뚝 솟아 있으면 중턱쯤 올라가면 왕과 왕비의 탑이 서로 갈망하는 눈빛으로 웅장하게 마주보고 있다. 그 아래에는 양귀비를 비롯한 각종 꽃들이 지천으로 빛난다, 소수민족들의 난전에는 이 인근 산악지역에서 재취한 각종 먹거리들이 소박하게 놓여 깊은 산 속 쓸쓸함을 덜어준다.
밀림처럼 나무들이 빽빽한 도이 인타논 정상은 산 아래와 상당한 기온차가 있으므로 두틈한 자켓이 필요하며 높은 산답게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화창한 날씨 속에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간 필자도 갑자기 짙은 안개가 까고 날까지 저물기 시작하여 난감했는데, 관리인의 도움으로 막 공사가 끝난 관리소 바닥에서 하룻밤 유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