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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drew Sep 05. 2015

도광양회: 어두운 골짜기를 걸으며

우울한 어느날에

2015년 5월, 상병 6호봉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자존감의 폭락과 무기력함, 어두운 시간의 연속에서 끝없는 우울감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완전히 지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있었다. 여기 휴가에 복귀한 군인이 넋두리 하고 있다.



 "아, 군인이요?" 나를 상대방에게 소개할 때 으레 듣는 뉘앙스다. 나라는 인격체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깃털만큼 가벼운 무게의 말투다. 아마 나의 존재를 그 정도로 느끼고 있겠거니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익숙치는 않다.


 한편, 전화선 너머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돌아설 때 드는 미적지근한 마음이 참 그렇다. 그들은 왁자지껄 이러 저러한 것을 한다는 근황따위를 이야기 해준다. 이 때 나는 4년 전에 재수할 때나 느꼈던 남들에게 뒤쳐진다는 감정이 새삼 든다. 그러잖아도 늦깎이로 군에 입대했는데 다들 지금 무언가 하고 있는 반면, 나만 이곳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푯대 없이 진로에 대해 갈팡질팡 하고 있다. 헤매는 자가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 하였다. 하지만 전역하면 곧 25세란 생각에 하늘이 깜깜해 보인다.


 군인은 계급 아래 평등하고 군인의 신분엔 무엇 하나 더하거나 감할 것 없다. 내가 기대했던 군인의 명예란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는 대단히 냉소적이다. 그 거울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단지 스타일 뒤처지는 까까머리 청년이다. 내세울 것 하나 없다. 비위가 상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의무에 입각해 군에 입대해, 자유와 통제와 상명하복의 비인견적 관계, 그리고 짙은 남성중심주의의 굴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회와의 관계 맺는 과정 속에서 자존감마저 균열이 생기고 있다. 때로는 정말 이 시간이 상처뿐인 나날, 어두운 터널의 연속 같다.


 그래서 내 군생활의 나날들은 감정 기복이 대체로 심했다. 즐거웠다가도, 금세 우울감의 상승과 어두운 길을 걷는듯한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부대에서 개인공부와 과업들을 해내고 있었지만, 사회와의 단절감과 정지된 시간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거대한 벽에 나는 무기력했다. 이등병때부터 그랬다. 이러다 우울감이 우울증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걱정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차디찬 반석과 같이 스스로에게서 어떠한 빛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때가 있는 것 같다. 근래에 들어 알게 됐지만 이를 가리켜 도광양회라고 한다. 그 의미는 '빛을 감추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함'이다. 유비가 조조의 슬하에서 묵묵히 인고하고 자신을 감춤을 빗대어 생긴 사자성어다. 무릇 다들 빛나지 않을 때가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나는 현재의 빛남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때로는 군생활의 나날들이 잃어버린 케이크의 한 조각처럼 느껴진다. 케이크는 인생이다. 그리고 꼭 그렇듯이 어느 한부분은 어떠한 달콤한 맛도 느껴지지 않아, 덜어서 버려내야하는 그런 조각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하는, 말 그대로 남는 것 없는 시간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터널이 끝난다면 나를 향해 예비해둔 것들을 하나 둘씩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조금은 품기도 한다. 또, 지금 나에게 준비시켜두는 것들 역시 분명 있을 것이다. 어두운 가운데서 어스름하게나마 빛이 나 쫒아가야할 표적, 아직 내가 제대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류의 것들을 고민해본다.

 

때로는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완전히 잘못 들은 나머지 되돌아가거나 애초에 다른 길을 걸었어야 했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걷는 길이 몹시 어둡고 흥분되어, 불만족스럽고 낙심될 때도 있다. 이 우울감의 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해내야만 하는 것들은 분명 존재하고, 지금에만 느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용기를 갖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또 결코 혼자 이길을 걷는 게 아님을 생각하며 한 걸음 더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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