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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drew Sep 05. 2015

포격 도발에 대한 단상

장졸에게 스포트라이트는 없다.


2015년 8월, 병장 2호봉



 삶속에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생각지 않은 질문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상상은 소극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실재와 마주할 때, 비로소 진심어린 답이 우러나온다. 그러나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곳에 머무른다. 그곳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이 그랬다.


 지난 20일 5시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과를 마치고 곧 복귀할 무렵에 갑작스런 적 포탄 낙하 소식이 전해졌다. 확성기 설치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었다. 퇴근 분위기가 역력했던 지휘통제실 및 참모진들은 즉각 소집됐고, 우리는 단독군장상태로 교대하며 대기해야 했다.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진돗개, 깜깜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밤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상황은 악화됐다. 적장이 대치지역으로 이동하고 북한은 일제히 포문을 개방하여 우리에게 정조준 하였다. 긴장은 고조됐다. 항간에는 적이 해상도발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였다. 바다를 감제하는 우리에겐 삽시간에 심각한 두려움이 휘감았다. 그날, 다들 바짝 긴장해있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내 마음은 두려움과 의연함 반반에 비장함 조금을 섞은 모양새다. 애써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진정해보지만, 불안함을 감추긴 쉽지 않았다. 으레 이런 경우 국지전은 전면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작전의 주도권은 공세를 쥐고 있는 적에게 있을 뿐더러, 전쟁은 계산되지 않은 운적인 요소도 늘 가미되기 때문에 쉽게 안심할 수 없었다. 전운이 감돌았다. 어색하고 낯설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을 하며 약간의 피곤함과 함께 그날밤, 혼돈을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두려움과 마음잡기를 반복하며 음산한 기분이 들고 신경이 곤두섰다. 그리고 허기졌다. 2시간여 전만 해도 정신도 말짱하고 배도 전혀 고프지 않았는데, 긴장이 본능적 욕구를 강하게 구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 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실재적인 두려움과 욕구, 긴장을 오가며 밤은 깊어져 갔다. 전투복 입고 누워있는 내 꼴이 우스웠다.


 언제나 예상한데로만 시간이 흐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긴장 속에서도 삶은 이어져만 나간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그러나 긴장 속에서도 삶은 이어져만 나간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보면 새롭지만은 않은 그런 하루였다. 단지 긴장과 피로가 뒤섞여 조금 더 피곤했을 뿐이다. 대통령 선거 때나 그렇게 왠종일 뉴스를 많이 봤을 것이다. 상황을 주시하다 보면 시간이 흐를 수록 치킨게임으로 이어지는 국면이다. 이럴 때 군인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하다. 단지 전투준비태세를 갖추며 정치와 외교가 빛을 발하는 것을 응시한다. 군인은 경계한다. 군인은 숨을 죽인다. 군인은 다만 기다린다. 낮에 기분이 꿍해서 가족 사진과 펜, 수첩등을 챙겨두었다.

 

TV를 보며 긴장과 두려움을 떨치려 노력했다. 토요일이지만 하루종일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걱정을 할까 집에 연락을 취했으나 전화가 잘 되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도 대체로 담담해 했다. 답답하여 전화부스에서 이내 나왔다. 온도차가 심했다. 나만 유난을 떠는 것인지?


 달이 밝았다. 이게 마지막으로 편히 자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밤을 헤매며 나와 마주하여 묻는다. 전쟁 속에서도 무형의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 전우를 돕고 나를 완전히 희생할 수 있는가? 언제든 죽어도 괜찮을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날은 그렇게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곤히 잤다.



 더운 일요일이었다. 대치국면은 여전했고 자유롭게 못 다녀 생활관에만 있어야 했다. 상황에도 슬슬 적응을 했다. 그러자 침울하고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무런 자극도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기나긴 회담이 어서 끝나기만을 원했다. 나는 군인으로서 완전히 부적격이었다.


 또 하루가 바뀌었다. 더 이상 별다른 추가도발은 없었다. 회담은 기나길었지만 잘 마무리됐다. 뉴스에는 시종일관 남과 북간의 이득을 따지는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간혹 장병들의 전역 연기에 대한 미담도 들썩였다. 그러나 대체로 정치적 이야기가 주류였다. 글쎄, 보아하니 군인들의 이야기는 3류로 분류됐다. 어색하진 않다. 늘 3류 주제이므로.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긴장과 두려움, 조국에 대한 이해를 오가고 있었는데, 지난 시간의 나는 부정받은 기분이었다. 그날은 조금 울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제외하고, 금세 세상은 평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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