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집

Farewell, Starcraft

여전히 그립습니다

by Anndrew



요즘 스타크래프트 하이라이트 보는 데 빠져있다.

자기 전 1경기씩 틀어서, 눈꺼풀이 내려갈 때까지.


이리 그리워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스타와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나 보다.





"너는 여가시간에 주로 뭐하니."

"스타 하거나 아니면 친구들이랑 축구해요."


초등학교를 입학하기도 전에 시작했던 나의 첫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였다. 아빠와 사촌 형을 따라 pc방에 가서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상대 종족을 정복하는 게임.


전쟁과 정복이야기를 좋아했던 나에게 안성맞춤의 게임이었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서 pc방에 용돈 천 원을 내고 가끔의 일탈처럼 즐기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던가 집에 들인 컴퓨터와 무선 인터넷. 이제는 집에서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다며 정말 행복해했었다.



나는 재주 없는 게임 실력으로 잘도 매일 하고 또 했다. 그러다 엄마에게 핀잔을 듣고, 그래도 몰래 또 하고.


그때 처음 깨달은 건 사람 간에는 재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래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다다를 수 있다는 것.


어린 시절 동경했던 사촌 형이 '프로토스가 제일 쉬워'라는 말에 고민 없이 시작했던 주종족, 프로토스.


하루 3판은 해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중학교에서도 스타 실력을 두고 서로 내가 잘하느니 서열 논쟁을 펼쳤던 기억이 새록하다.





나는 스타 보는 것 또한 참 좋아했다.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즐비했고,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게이머는 강민이었다.


몽상가라 불리던 그는 때로는 기상천외한 전략들로, 때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운영을 보여주면서 승승장구하는 게이머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2006년의 프링글스 MSL 4강전이었다. 당시 스타판에서 '본좌'소리를 듣던 마재윤을 상대로 1시간의 혈투 끝에 1차전에서 승리를 따냈을 때, 나는 방을 뛰어다니며 기뻐했었다.


그러나 이후 허무하게 3판을 내리 패배하며 느꼈던 허무함. '그래도 마재윤을 잡아낼 수 있는 프로토스는 강민뿐이야'라는 나의 팬심이 무색하게도, 마재윤은 다음 시즌에 다른 듣보잡 프로토스 선수에게 처참하게 패배당했다.


그리고 강민 역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날 밤에 잠을 못 이뤘다.




아무쪼록, 수많은 스타 경기들에서의 명승부는 나의 유년기를 가득 채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라는 명언은 게임에서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나갔고, GG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스타는 노력과 열정이란 키워드를 내 10대에게 선사했다.


스타 게이머들은 주류사회에서 인정받는 이들이 아니었지만 묵묵히 자신들의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자신을 응원하는 이들에게 보답하려 노력했다. 그러니 팬들 역시 그들에게 고마워할 수 있었다.

스타는 그렇게 늘 내 여가생활의 한축을 담당했다. 나는 축구소년이었고, 또 스타 소년이었다.





고3 수험생활을 시작하며 스타를 삭제했다.


내 수험 생활은 재수로 이어졌고, 스타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재수가 끝난 뒤에도 스타를 하는 일은 드문드문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친한 친구에게 전해 들은 소식. 스타리그 승부조작.


이후 스타 2 발매와 맞물려 스타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나의 줄어들던 관심과 함께 그렇게 어설픈 작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서히, 열정의 온도는 차분하게.


어쩌면 그런 거 볼 나이는 지났다고도 할 수 있겠고, 아무쪼록 그런 3류 이별을 맞이했다.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뒤안켠으로 사라지는듯했다.






"너는 여가시간에 주로 뭐하니."

"..."


몇 년만에 들어보는 이 질문에 움찔했다. 대충 얼버무렸던 것 같다.


그 한 마디에 새록히 생각나는 스타와 보낸 나날들.


이별할 때는 몰랐지만, 나는 스타의 빈자리가 그리웠던 거다.


충분한 감정 교감 없이 제대로 작별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떠나보낸 빈자리. 내 여가 시간은 여전히 허전하여 스타의 자리를 그대로 남겨놓은 듯 하다.




'몽상가, 콩, 황제, 천재, 괴물테란, 투신, 등짝, 귀족, 사신, 폭군, 대인배, 목동, 레인보우, 악마'

'GG'


나는 도도리표처럼 자꾸만 그 때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


그 때 나와 함께 놀아준 친구들에게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슬프게 헤어지지 못해서 그 슬픔을 오래 담고 있는다고 한다.

이별의 순간이 슬프지 않았다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두고라도 슬픔이 남아 있게 된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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