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원 아웃
프로 야구 구단 한화 이글스는 오늘도 상대에게 리드를 내준다.
실점, 실점, 실점. 어쩌면 내 인생도 이와 같을지 모르겠다.
최악의 감독과 함께 하는 올 시즌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 한화가 지는 경기들.
매 경기가 기대가 되지 않음에도 계속 경기를 보게 되는 건, 어느새 나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했음이요, 한낱 같은 희망을 그들에게 담보했기 때문일 거다.
3번 중 2번은 지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시대와 동떨어진 용병술을 보면서도, 그들에겐 이미 나의 자아가 투영되어 나는 그들에게 쉽사리 등을 돌리지 못한다.
어쩌면 시시콜콜한 승리와 패배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일매일을 싸우고, 어제 지더라도 오늘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합을 가져야 하는 건 여느 인생들과 몹시 닮아있다.
어느새 나는 잔뜩 중독돼버렸다. 피버 피치의 작가 닉 혼비가 말한 것처럼, 한화는 내 삶의 분신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한화 없이 겨울을 보내는 일은 다른 사람들마냥 정상적인 삶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완전한 나의 모습이 아니란 건 사뭇 분명해 보인다.
9회 말 원 아웃. 타자는 어김없이 배트 박스에 들어선다. 하위타선으로 이어져 기대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또다시 이 약체 팀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어제 그렇게 지고 또다시 쓸모없을 기대를 걸고 있다. 스윙, 스윙, 스윙으로 삼진은 예정되어 있다.
가끔은 이런 내가 싫다. 오늘 나의 분신이 곧 있으면 패배할 모습을 마주하면, 내 삶 역시 이처럼 완전히 망쳐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직 카운트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대를 담아야 한다. 스코어가 0-3이 아니라 0-30이더라 하더라도,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대상에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잘 안다. 이런 나 자신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삶의 문제들에 대해 매양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지난 8회 동안의 형편없는 경기 내용을 살펴볼 때, 여기에 더 이상 기대를 두면 안 되었고, 나는 좋은 내일을 위해 진작에 발이나 닦고 잠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분신이 4시간여 동안 지고 있음에도 9회에 다시 배트 박스에 올라서는 상황에서, 나 마저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기대가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해내 주길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역시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일 거다. 끝날 때까지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다.
"길이 다소 미끄럽긴 하지만 낭떠러지는 아니야."
-에이브러햄 링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