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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min Yun Sep 21. 2018

있으면서도 있지 않은 디자인, 무인양품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을 알아보다

유용성의 한계를 넘어 범용성의 가치에 도달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생활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쯤은 이곳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실은 나는 무인양품을 상당히 사랑하는 소비자 중 한 사람이다. 평소 자주 즐겨 찾게 되는 무인양품의 제품들이 있는데, 그들은 억지스럽지 않게 녹아들어 어느새 일상의 일부가 된다.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있지 않은 듯 자연스레 그 환경과 하나가 되는 디자인. 무인양품은 그런 면에서 내게 '있으면서도 있지 않은 디자인'인 것이다. 실제로 주변 무인양품 매장에 들어가 경험해보면 알겠지만, 무인양품은 그 이름처럼 제품에 브랜드 각인을 넣지 않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 유행을 따라가는 스타일, 더 나아가 말 그대로 있어 보이게 하는 모든 것들은 무인양품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무인양품의 약 7000여 개의 품목들은 가장 단출하고 편한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디자인은 소비자의 삶 속에서 유용성의 한계를 벗어던진다. 어떻게 여백으로 가득 찬 디자인이 그럴 수 있는 걸까. 



존재하는 것에 관한 연구인 형이상학에 관심을 보인 철학자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가장 보통의 것들이 그들만의 독창성 되기까지


브랜드의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인  다나카 이코(田中一光). 그는 바우하우스 철학을 품은 모던함과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결합시킨 작업들로 일본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그는 창립 당시 무인양품이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던 ‘이유 있는 좋은 제품’이라는 이야기를 명료한 타이포그래피와 차분한 색감의 포스터로 구현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많은 것을 덜어내면서 창작을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내키지 않는 일인지 디자이너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디자인에 확신이 들지 않을수록 우리는 과잉 장식을 덕지덕지 덧붙여 여백이 없는 디자인을 탄생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다나카 이코의 디자인은 참으로 멋지게 느껴진다.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가 진정한 예술작품은 늘 가장 말이 적은 편이라고 한 것을 돌이켜보면 다나카 이코의 것은 멋진 과묵함을 지녔다. 



무인양품의 창립멤버인 그래픽 디자이너 다나카 이코의 초기 브랜드 컨셉 포스터. 무인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no brand goods’의 가치가 잘 드러난다.


다나카 이코에서 출발한 무인양품의 ‘no design’ 철학은 아트 디렉터 하라 켄야(はらけんや)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본 디자인 센터의 대표인 그의 디자인 철학의 핵심은 ‘Emptiness’ , 즉 '공(空)’의 개념이다. 비어있는 것이 결코 그 자체로 비어있는 것이 아님을 그는 계속해서 강조하는데, 여백을 지닌 것이야말로 언제든 다시 채워질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무인양품의 7000여 품목들이 가진 시각적 미니멀리즘보다는 그것들의 본질에 집중하길 원했다.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들을 치워두고 브랜드가 가진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결국 ‘이것으로도 충분한’ 것이 가장 훌륭한 것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그가 내세우는 디자인 철학이었다. 


오늘날의 소비자는 무수한 정보와 시각적 장애물에 둘러싸여 원치 않는 피로를 안고 살아간다. '있음'의 과부하 세상에서 하라 켄야와 무인양품이 내세우는 ‘여백의 미’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텅 빈 그릇과 같은 이 브랜드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다양한 일상이 자리 잡기에 좋은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무인양품이 전 세계에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어디까지 유연해질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브랜드


"지금 무인양품은 항공사, 여행사, 호텔, 야구팀까지 만들 수 있어요. 저는 무인양품의 투수라면 강속구를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어두운 무채색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다…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다나카 이코가 무인양품을 시작할 때는 제품이 40개 정도였어요. 제가 참여한 후로는 5000개 정도가 됐죠. 단순히 생활용품을 파는 게 아니라 생활 전반을 오퍼레이션 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거죠..”



올해 3월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주최하는 미래의 주거환경에 관한 전시형 심포지엄 '하우스 비전'의 창시자로 내한한 하라 켄야가 조선일보 김지수 대중문화 전문기자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야기 한 내용이다. 2015년 도쿄 디자인 위크에서 소개해 화제를 모았던 무지 헛(Muji Hut)부터 올해 초 중국 심천에 오픈한 무지 호텔(MUJI Hotel)까지. 무인양품은 단순히 생활용품을 파는 곳을 넘어 말 그대로 다양한 생활의 형태를 제공하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무지 호텔에서 고객들은 그들이 머무르는 기간 동안 무인양품을 입고, 덮고, 먹고, 읽으면서 브랜드의 철학을 오롯이 경험한다. 무지 호텔은 그저 호텔의 방식을 취했을 뿐 하라 켄야의 말처럼 그것은 그 무엇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단출한 색에 순수한 재료, 그것을 감싸는 간소화된 포장까지. 다른 화려한 것들과 구별되는 그들의 디자인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묵하게 그 자리를 지킨 채 우리 일상에 녹아든다. 소리 높여 자신을 어필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소비자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무인양품이다. 별것 아닌 것 같이 보이는 것이 주어진 역할 그 이상을 해내는 것 말이다. 변화하는 것들이 하나 둘 떠올라 사라질 때, 그들의 변치 않는 철학은 오늘도 우리 곁에서 그 존재감을 보여준다.




無印良品은 전 세계에 700개 이상의 매장이 있으며 의류 잡화 및 생활잡화,
식품에서부터 집까지 약 7천여 개가 넘는 제품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사상과 근본은 설립할 때부터 변치 않았습니다. 항상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우리는 생활의 '기본'과 '보편'을 지향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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