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부터 미래파 타이포그래피까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꿈의 세계'를 해석하다
과제가 밀린 날에 미대생들에게 잠은 사치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적은 시간만 잠에 들어도 금방 에너지를 회복하는 체질 덕에, 남들보단 조금 덜 퀭하게 학기들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연적으로 모두가 잠을 아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렇게 아끼고 아낀 잠은 후에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큰 타격을 가한다. 수면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음을 늘 뒤늦게 깨닫는다. 정신 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자신의 저서『꿈의 해석(Die Traumdeutung)』을 통해 '수면이란 것은 우리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인간을 전제가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해석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꽤나 중요한 것이라 말한다. 그런 프로이트의 학설은 후에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통제와 논리가 미치지 못하는 말 그대로 ‘무의식’이 가득한 꿈이란 것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의 본질적 요소가 되어버린 반항의 정신
오늘날 우리가 ‘초현실주의(surrealism)’라고 일컫는 예술사조 역시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모두에게 너무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나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와 같은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을 떠올리면 조금 연상이 쉬울지도 모르겠다. 초현실주의가 그 형태를 갖추게 된 데에는 1924년 앙드레 부르통(André Breton)이 발간한 『쉬르레알리슴 선언(Manifeste du surréalisme)』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실은 그 이전에 미래파 운동의 선구자인 필리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의 『미래주의 선언(Manifeste de Futurisme)』이 있었다. 마리네티가 1909년 2월 20일 프랑스의 신문 피가로(Lefigaro)지에 발표한 미래주의 선언은 전통에 반기를 들고 기계문명이 가져온 속도감과 운동성을 찬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또한 그는 선언문에서 미래파 작가들에게 모든 운율의 틀을 버리고 자유롭고 즉흥적이 되는 것을 요구했으며, 이것은 미래파 타이포그래피가 발전하는 시초이기도 했다.
실험 속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는 시인의 언어들
물론 마리네티의 이 선언이 파시즘(Fascism)에 기여한 것에 대해선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내가 관심 있게 들여다본 부분은 바로 마리네티가 작가들에게 요구한 타이포그래피적 실험정신이다. 후에 이어지는 다다이즘(Dadaism)과 초현실주의(Surrealism)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형식과 논리에 얽매이지 않은 무의식을 닮은 세계를, 조금 더 일찍 활동했던 미래파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미래파가 제시한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는 그동안 전통에 갇혀있던 타이포그래피 영역에 신선한 충격을 가했다.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문법과 구문론을 무시하며 감정의 표현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그것은 언어 표현 방식의 새로움이었다. 또한 트리스탕 차라(Tristan Tzara)와 리하르트 휠젠베크(Richard Huelsenbeck)와 같은 시인들은 소리 시(Sound Poetry), 무의미 시(Nonsense Poetry) 등에서 실험적 탐구를 실행하면서 그 모습을 이어나갔으며, 이는 다다이스트들이 전달하고자 하던 전후 상황에 대한 비판과 풍자와 결합되면서 더욱 담대하고 신선한 방향성을 가지게된다.
In his Manifesto, Marinetti advocated “words in freedom”—a language unbound by common syntax and order that, along with striking variations in typography, could quickly convey intense emotions.
언어에게 자유를!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꾼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감각할 수 없으며, 무의식에 가라앉은 파편들을 주어 모아 열심히 의식 세계로 끌어온다 할지라도 그저 일부분만을 마주하게 될 뿐이다. 때문에 꿈은 늘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마리네티와 다다이스트들의 타이포그래피가 나에겐 그런 면에서 어딘가 꿈을 닮아있다. 각자의 무의식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는 언어들은 마치 달리와 프로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논리들을 멋지게 뛰어넘는다. 전날 밤 꾼 꿈에 하루 종일 두근대던 경험처럼, 이들 작업의 역동성은 오늘도 우리에게 생경한 충격을 가하며 얘기한다. “언어에게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