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gmin Yun Jul 10. 2021

떠날 순 없지만,
인터넷은 할 수 있잖아요?

방구석에서도 여행의 감각을 깨워주는 모바일/웹 서비스들


요즘같이 삶의 리듬이 단조로웠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이사 전의 다짐과는 다르게, 당차게 시작한 나의 1인 가구 생활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잦은 와식 생활에 심심치 않게 좌식을 곁들인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이젠 출근도, 점심도, 희미한 취미생활도, 심지어는 운동까지 집에서 하는 것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이 단조로움에 나름대로 변주를 주고자 애정 하는 작가의 신작을 구입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이런 나의 방구석 여행이 안타까워 맘이 시큰해졌다. 나도 그녀가 누빈 것처럼 지구 곳곳을 다정히 바라보고 싶은데! 쉴 틈 없이 나의 두 눈과 귀, 그리고 혀 끝을 파고들던 여행지에서의 생경한 기쁨과 같은 것들이 뭉근하게 방구석에 떠올라버렸다.


하지만 지금이 떠날 수 없는 시기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래서 떠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한동안 심심했을 나의 감각들에게 온라인에서라도 안부를 물어보고 싶었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다'는데, 내 삶을 나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바로 이런 결심이 나를 아래 여섯 친구들에게 닿게 했고, 그 덕에 여태껏 나의 오감은 방구석에서도 간간히 살아있다.




푸딘코 |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인스타그램 속 백종원쌤 푸딘코가 앱으로 찾아왔다. 그동안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설 때면 가장 먼저 포털 검색창에 '푸딘코+지명'을 검색하던 나였는데, 이제부턴 이 앱을 켜는 것으로 그 결심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앱을 실행하면 유저의 GPS를 기반으로 카테고리 별 음식점들이 지도 위 나열되고, 혀끝에 오래 머문 그리운 맛은 북마크 기능을 통해 보다 자주 만날 수도 있다. 숨어있던 맛집들이 푸딘코를 만나 지도 위로 얼굴을 빼꼼 내밀게 된 것이다. 많은 것이 단절된 일상에서, 미식만은 지켜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 배가 부르다.


알고 보니 푸세권이었던 우리 동네, 다시 봐도 참 곱다. 참고로 안드로이드에서는 7월 말 베타 버전이 오픈된다고.




Routinery | 전형적인 계획형 인간은 다 그렇듯, 나의 여행은 그곳에서의 계획을 찬찬히 쌓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모든 여행은 영원할 수 없고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게 넘치는 사람이라, 밀도 있는 계획의 순간을 잠깐이라도 여행에 포함시켜야만 비로소 여행에서의 만족감이 아쉬움을 크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어제를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은 여행과 유사하다. Routinery를 통해 마치 여행을 준비하듯, 행동을 묶어 나가다 보면 '내가 이렇게나 계획형 휴먼이어도 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정도로 기특한 루틴이 이곳에 가득하니, 한창 유행이라는 비즈 팔찌를 만드는 마음으로. 오늘은 흐트러진 일상을 가지런히 끼워 맞춰보는 건 어떨까.


어떤 루틴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된다면, default로 설정된 루틴 먼저 살펴보자. 생각보다 유용한 루틴이 많다.




texture scrap | 누군가는 여행지를 향으로 기억하고, 또 누군가는 나처럼 곱게 쓰인 문장으로 여행지를 추억할 것이다. 사람마다 고운 문장을 대하는 방식은 다를 테지만 내 경우는 보통 밑줄을 긋거나 모서리를 접는 것에 그친다. 대게 그런 문장들은 다시 빛을 보진 못하고 어딘가로 흘러가버려 아쉬울 때가 잦다. 흘러간 문장을 모두 엮으면 두터운 코트라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여태 책을 괴롭히는 것 말고는 별다른 묘책을 찾지 못했다.


texture scrap은 책을 읽으며 사랑하게 된 문장을 기록할 수도, 다른 이의 사랑을 받은 문장을 살펴볼 수도 있는 아카이빙 플랫폼이다. 이 귀한 서비스 덕에 나는 지나간 독서들을 드.디.어 소중히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다른 이가 사랑한 문장을 처방 삼아 독서 편식을 줄여나가는 재미도 생겼다. 매력적인 문장을 품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셀프 거리두기 하던 분야의 책을 책장에 들여놓기도 했다. 당신도 나처럼 맘 속 어딘가에 매서가 기질을 숨겨놓고 사는 사람이라면, 장담하건대 금방 이 서비스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문장을 더하고, 수집하는 간결한 UX에 포인트 컬러가 산뜻한 포인트를 준다.  어서 앱도 릴리즈 되었으면..!




WindowSwap | 바이러스가 제 힘을 과시하는 시대가 되면서 이곳저곳에선 많은 문들이 굳게 닫혔다. 문이 닫힌다는 것은 문 너머의 세계도 잠시 멈춘다는 것. 그렇게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들이 바이러스로부터 먼 곳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WindowSwap은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제출한 창문 밖 풍경을 나의 집으로 잠시 빌려올 수 있는 사이트이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창으로의 변경을 위한 CTA의 레이블이 'Open a new window somewhere in the world'인 것이 맘에 쏙 든다.


저번 주 나는 버지니아에 사는 누군가의 숲 속 오두막을 빌려와 일했다. 버튼을 누르면 세계 어딘가로의 문이 열리고 동시에 마음의 문도 함께 열려 답답하던 무언가 환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 도라에몽 속 '어디로든 문'처럼, 이 사이트만 있다면 코로나 시대에도 충분히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몇 번의 문을 지나 만난 이스라엘의 테라스. 크롬캐스트를 등에 업고 집에 잠시 빌려오니 코 끝에 따듯한 바람이 잠시 머문다.




BLIMP |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있는 곳이 오피스가 된다는 점일 것이다. 거기에 BLIMP가 더해지면 도쿄의 지하철, 공항의 대합실, 뉴욕의 재즈바까지 오피스가 확장된다. 비행선이 자리 잡은 앱 아이콘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BLIMP는 나의 귓가에 세계 곳곳의 소리를 데려다주는 친절한 기장 역할을 한다. 심지어 이 기장님의 운전이 얼마나 섬세한지는 '하얀 피아노가 놓인 에릭 사티의 방', '하루가 저무는 방콕의 야시장', '온전한 치유를 위한 병원 회복실'과 같은 큐레이션 타이틀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BLIMP가 유튜브와 다른 점은 바로 이 상냥함이다. 그들은 사운드를 각각의 '공간'으로 칭하고, 공간에 들어가기 전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청자는 어떤 감상과 가치를 가져갈 수 있는지를 상냥한 사진과 글로 전달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파리의 센 강변 카페 테라스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옆에선 식기가 잘그락거리고, 사람들은 강바람에 웃음을 섞어 나누는. 파리는 멀고도 참 가깝다.


기본적으로는 구독형으로 운영되나,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있으니 궁금하다면 먼저 들여다보는 것도 방법!




I Miss My Bar | 개인적으로 나는 하루키스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하루키라는 사람에 백번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재즈에 술을 곁들이는 것을 즐긴다는 데에 있다. 재즈는 내게 있어 굉장히 수고로운 음악이다. 내가 기울이는 수고의 총량이 크면 클수록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깊은 매력을 끄집어 내 뽐내는 장르라는 점에서다. 코로나의 훼방으로 재즈바와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요즘, I Miss My Bar에서는 언제까지고 멋진 음악에 술을 곁들이며 있을 수 있다. 바텐더처럼 내 입맛에 맞게 날씨와 분위기를 수고로이 조절해보자. 어쩌면 옆 자리에 하루키가 앉아있을 법한 근사한 바가 만들어질지도 모르니.


이 사이트는 멕시코 칵테일 바인 Maverick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플레이리스트는 바 직원들이 매주 업데이트한다고.





좋지 않은 시기를 살아가며 많은 것이 변했다. 조금 나아지는 듯하던 상황이 하루아침에 최악을 향해가면서 나는 여행 계획을 한번 더 미루기로 다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이러스는 내 wifi엔 관심이 없다는 것. 때문에 최근에는 이 친구들과 나의 하루를 멀리, 더 멀리 늘려보는 것으로 맘을 달래고 있다. 


하루빨리 차곡히 쌓은 계획과 함께 출발한 여행지에서 달큼한 타르트도 잔뜩 먹고, 하루 중 가장 근사한 시간을 걸어둔 창을 가진 바에 앉아 오래 함께한 책에 수고로운 한 잔도 곁들일 수 있기를. 모두가 각자의 감각을 마구 괴롭히며 지구 곳곳을 누빌 수 있는 날이 보란 듯 찾아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떠날 순 없지만 인터넷은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