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미라클모닝이고 나발이고 살아있는 거 자체가 미라클인 내게 브런치북 발행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1.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한 달간 최소한의 움직임만 했다. 대부분의 날들을 집에서 보냈으며 약속 또한 잡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그 당시에는 간절했다.
출근시간이 되면 어딘가 뒤숭숭한 마음이었다. 늦잠 자고 싶어도 아침 7시 전에 눈이 떠지곤 했다.
퇴사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
직장인이었을 때 이 회사가 나의 마지막 회사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 정도로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자부심이 있었던 내가 퇴사를 고민하고 결심하기까지 내 삶이 얼마나 우중충했는지는 그간 적은 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1년이 기록된 일기 속 나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별 거 아닌 일에도 너무 많이 힘들어한 내 모습이 안타까워 마음이 저려왔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는 없고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공간과 소음에 예민해지고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이유 없이 날 빤히 쳐다보던 사람, 버스에서 가방을 치고 그냥 가는 사람 등 사소한 거에도 무척 신경질 났었는데 요새는 아무렇지도 않다.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그런가 보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게 되며 적당히 무뎌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트라우마로 인한 과다각성, 우울 장애가 오기 전까진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휴대폰 터치 몇 번에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 보는 것과 필요한 가구까지 살 수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다.
규칙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니 편했는데 희박한 운동량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꼈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끼니를 거르거나, 간편한 인스턴트로 때우고 소파에 누워만 있었다. 편하게 쉬라는 말이 게을러지라는 말은 아니었을 텐데.
여전히 소파는 날 끌어당기지만 애써 외면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소파 밖으로 나와서 살고 싶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 브런치 작가가 된 계기
우울증 진단을 받은 나는 정신의학과를 제때 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다지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고요한 집에 누워서 천장을 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내게 제12회 브런치북 공모전은 나를 소파 밖으로 끌어내기에 충분하고도 넘칠만한 일이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있었나?
몇 년 전 브런치를 알게 된 순간부터 막연하게 내 이야기를 쓸 날을 상상해 왔다.
블로그처럼 아이디가 있으면 개설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작가신청과 승인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에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했다. 빠른 포기가 내 특기랄까.
핑계를 대보자면 검색해 보니 대충 봐도 n번째 도전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트라우마로 인한 과다각성,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브런치에 글쓰기가 생각났다. 그 순간에 왜 브런치가 생각난건진 의문으로 남았다.
내 이야기를 하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어딘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슈퍼거북목 사무직으로 살아온 내가, 더 이상 책상 앞에 앉기도 싫다던 내가 스스로 노트북을 켰다.
브런치북 공모전 마감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날이었다.
3. 브런치 작가가 된 후
10월 4일 브런치 작가 신청,
10월 7일 브런치 작가 승인,
10월 8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발행하여
10월 26일 첫 번째 브런치북을 발행했다.
저는 튀김의 익힘의 정도를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제 발등튀김의 굽기는 굉장히 타이트해서 좋았어요.
- 브런치 꼬마작가 윤지아
*발등튀김 :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매우 절박한 상황을 표현하는 신조어
한 번에 작가신청이 승인된 것만으로도 내 운을 굉장히 많이 소진했다고 생각한다.
이 운에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발행해 공모전까지 무사히 신청했지만 내 발등튀김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행히도 자주 튀기진 않는다(?)
불의 온도를 조절해 튀김으로 만들진 않고, 멈추지 않고 나아갈 정도로 따뜻하게 데우는 임시처방이랄까.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난 후에는 내 발등에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도 덜 미워 보이기 시작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매일매일 글을 발행하는 동안 스트레스받기보다는 행복했기 때문이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브런치북을 생각하면서 누워서 멍 때리는 시간,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꼈었다. 발등의 불을 환영해 보긴 처음이었다.
다음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나의 온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아가보려 한다.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불이 언제 발등 위로 떨어질지, 시시하게 꺼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나를 포용하며 살아보려고 한다.
똥통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하니까.
이쯤에서 이 글을 읽어준 당신에게 묻고 싶다.
발등의 불은 당신을 멈추게 하는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인간의 뇌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한 것은 전부 해내고야 만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뇌는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기 때문에 틀림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확신습관을 만들면 누구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뇌를 설레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도 습관을 만들 수 있다. - 하루 5분 습관수업, 요시이 마사시
안녕하세요. 브런치 꼬마작가 윤지아입니다.
저의 첫 브런치북 <'필요시'약을 복용하시오>는 우울증을 비롯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자그마한 힘이 되고자 쓴 글입니다. 한 회씩 발행하면서 저 역시 우울과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을 힘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쓴 게 처음이라 왠지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요즘에는 다음 글을 쓰기 전에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고 싶어서 브런치를 떠다니고 있어요.
많은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위로받고 응원하다가, 늦지 않게 새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브런치북 라이킷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yunjiahfir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