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우울 처방
난 나에 대해 잘 모른다.
잘 모르는 것인지 매번 변하는 예측할 수 없는 성격 탓인지 알 수 없다.
사실 나에 대해 깊고 섬세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렵다.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따라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을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가진 것도 없고 딱히 대단한 것도 없었으면서 왜 행복하다고 느꼈을까.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한 걸까? 그건 아닌데.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니 늘 우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그건 아닐 텐데.
자신의 우울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우울증의 첫 번째 증상이 아닐까 싶다.
"우울증은 일단 기본적으로 내면의 감정을 대체적으로 숨겨요. 항상 밝고 괜찮고 웃는 애들이 의외로 우울증이 많습니다. 남에게 자기가 우울하다는 걸 들키면 그 사람까지 우울하게 하는 건 아닐까 괜히 별 거 아닌 것에도 신경이 자주 쓰여서 그래요."
우울증을 감춰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울증 있는 사람은 하루종일 집에 박혀서 우는 줄 아는데 우울증 환자도 즐거울 땐 즐겁고 또 성격이 밝을 수도 있는 거다. 밝은 사람은 우울하지 않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밝은 건 우울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그 순간은 즐거울 수 있는 것이고, 정말 밝은 사람인 게 맞다. 다만 동시에 우울한 뿐이지. 그 어느 감정도 거짓은 아니다. 그저 동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우울증 환자가 기분이 좋아 보이면 우울을 숨기고 있는 거라 앞서 예상치 말고, 그를 동정하거나 우울증이 나았다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환자 스스로도 이 동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 본인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실제로 즐거운지 아님 그런 척하는 건지.
"난 우울증 환자니까 이 즐거움은 가짜일 거야."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우울증을 자신의 본질 또는 정체성이 아닌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진실된 즐거움을 부정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다.
사람마다 치료법도 다르고 기간에 따라 증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게 치료법이다.
최근 찾게 된 나의 우울 치료법은 산책이다. 영하 기온을 왔다 갔다 하는 날씨에 무슨 산책이겠냐만은 얼어 죽을 추위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얼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과 선생님에게 요새는 마음이 얼어가는 느낌이라고 했더니 "햇빛이 줄어들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해가 짧은 겨울이지만, 해가 떠있는 짧은 시간에나마 나가서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울 산책은 낮 시간에도 춥고 또 춥고 생각보다 더 춥지만 덕분에 내가 잊고 있던 걸 기억나게 해 주었다.
바로 내가 겨울 냄새를 좋아한다는 것.
우울증으로 정신의학과에 다닌 지 세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겨울은 처음이라 두렵기도 하지만 반갑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는 감정기복 변화의 폭은 줄었지만 멍하고 기운이 쫙 빠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누울 수 있다면 누워만 있는 나에게 걷기란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 같았는데 어느새 걷고 있다. 뻔하지만 산책이 최고의 우울 처방이긴 한가보다. 시간이나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하루에 한 번 잠깐이라도 산책을 하면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내일은 오늘보다 일찍 나가서 기분 좋은 느낌을 더 오래 느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