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침대 위, 스마트폰 금지 구역

스마트폰이 없는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by 윤지아

책에서 스마트폰 금지 구역을 만들어보라는 글을 읽었다.

생각해보니 내게 스마트폰 금지 구역이라고는 집 안은 물론이고 집 밖,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난 스마트폰 없이는 가만히 있질 못하는 현대인이다.

심지어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올 때에도, 화장실을 갈 때에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초조하고 불안하다.

스마트폰이 없는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며칠 전, 집 밖을 나선 후에야 스마트폰을 두고 나온 것을 알았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만 다녀올 거라 두고 나온 채로 도서관에 갔다. 책을 반납하고 읽고 싶은 책들을 대출해오기만 하면 되는데,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읽고 싶은 책 목록이 기억나질 않았다.

도서 검색대를 지나쳐 수많은 책이 꽂힌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나갔다. 책제목을 읽고 그중 하나를 골라 목차와 중간내용을 읽다가 마음에 들면 챙겼다. 어느 때보다 책 고르는 데에 신중했다. 다른 사람의 후기를 검색해 볼 수 없고 미리 알아온 책이 아니니 고심 끝에 고르게 되었다.

원래의 나는 책을 고르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스마트폰이 없는 나는 그날 도서관 난방이 매우 잘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 하나 없어졌을 뿐인데 그 자체로도 전혀 다른 환경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끌벅적한 핫플레이스에서 빠져나와 나만 아는 아지트에 도착한 것 같달까?


그날 나는 침실에 스마트폰을 들고 가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서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했다.

초단위로 변하는 영상도, 내가 관심 있어할 만한 알고리즘도 없이 오로지 내 안에서 비롯된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의 주도권은 나였다. 스마트폰이 없는 나는 주체적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구나.

스마트폰이 없을 때에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그날 있었던 일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도 했던 것 같은데.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질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에도,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나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언제든 나의 분명한 생각이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스마트폰을 멀리해야겠다. 종종 내게 그런 시간을 선물해야겠다. 내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keyword
이전 10화'오늘 하루'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