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하나도 안 궁금해
우연히 채널을 넘기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상단에 떠있던 '세계적 행복학자 행복해지는 법'이라는 타이틀은 돌리던 채널을 멈추게 만들었다.
행복을 느끼는 기준은 각 개인마다 크게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매우 주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행복은 강도보단 빈도인 걸까, 그렇다면 하루 중 몇 번 행복해야 행복한 사람인 걸까 생각에 잠기곤 했다.
행복도 1위인 핀란드인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집단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평가받을 일이 많고, 평가받는 것뿐 아니라 나 자신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평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수님의 '사회 비교는 행복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경험'이라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는 건 행복을 위해선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행복감이 낮은 사람이 SNS을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SNS를 자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뷰를 보고 느낀 건 나 또한 많은 괴로움을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내가 좌절하게 되는 순간마다 이 감정이 나로부터 오는 것인지,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온 감정은 조용히 덮어둘 수 있었다.
아침 일찍 빨래를 널고 집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섬유유연제 향을 맡을 때, 한강에서 바람을 가로지르며 자전거를 탈 때, 적당한 온도의 수영장에서 마음껏 수영할 때,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이렇게 아주 소소한 순간들에서 틈틈이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그럼 더 이상 섬유유연제 향에, 자전거를 탈 때, 수영할 때,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걸까?
반대로 생각하면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는 건 아닐까.
최근의 내가 하나 깨달은 건 내 행복은 오직 나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벅차오를 만큼 행복했던 순간을 열심히 설명해도, 오직 나만 그 순간의 감정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나의 행복을 설명할 필요도, 과시할 필요도, 남의 행복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각자 자신의 행복은 자신만이 느낄 수 있고, 자신만 느끼면 된다.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어쩌면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모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비교는 무의미한 일이다.
검색창에 행복해지는 법을 검색할 필요가 없다. 매체를 통해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건 남들이 말하는 행복이지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아니기에.
나는 내 행복만 느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