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아닌 경험의 기억으로

by 윤지아

오은영 선생님께선 삶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거라고 했다.

KBS2 <대화의 희열> 패널들에게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기말 수학 점수를 적어보라고 하셨고, 다들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한 번이라도 공부한다고 커피 마시고 잠에서 깨려고 세수하며 밤을 새 본 적 있느냐고 다시 한번 물으니 다들 손을 들었다.

이후 오은영선생님은 "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점수를 기억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결국 기억하는 건 학창 시절의 점수가 아니라 잠을 쫓아가며 열심히 공부해 봤던 학창 시절 노력의 경험이라는 것. 시험점수(결과)가 아니라 열심히 해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결과가 아닌 경험의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좋았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마음이 시킨 대로 열심히, 끝까지 해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그 기억이 결국은 무의식 속에서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요즘은 AI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AI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난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상한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철칙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바라고 매달릴수록 시야가 좁아져서 숨이 턱 막히고 점점 멀어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이것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무엇이든 가볍게 시작하게 되었다.

생사가 달린 일도 아닌데 조금 재미있게 해도 되지 않을까?

잘 못하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앞으로 잘할 일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모든 걸 다 잘해야 한다고,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의 내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다시 한번 떠올랐다.


최근 AI의 정확도나 퀄리티가 굉장히 좋아졌다고 느낀다.

얼마 전 유행했던 지브리스타일로 그림 그려주는 것이라던지, 블로그 키워드 몇 개 주고 자연스럽게 글을 써달라던지 했을 때 퀄리티가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에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데, 딱히 위기로 느껴지진 않았다.

난 AI가 할 수 없는 나만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AI로 제작된 사진이나 글의 경우, 사람이 한 건지 AI가 한 건지 알 수 없을 때 저작권의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내가 찍은 사진, 내가 쓴 글은 내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AI에 굳이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물론 정보를 찾는 경쟁에서는 AI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AI에게 없는 "자아"가 있다.

내가 경험을 할 때 AI는 학습을 할 뿐이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AI는 서술할 뿐이다.

나는 내가 어떤 자아를 가지고 있는지, 이 자아를 구성하는 경험들은 무엇인지, 나의 자아를 통해 어떤 감정이 나오는지를 통해 AI와 나를 구분시킨다.

내가 쌓아갈 경험이, 내가 느끼게 될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어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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