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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 있던 능력

처음 해보는 일을 해낼 때면

by 윤지아

처음 해보는 일을 해낼 때마다 나에게 이런 능력도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해외로 가족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엄마는 내게 포토북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여행을 마친 후에는 핸드폰 사진첩을 굳이 찾아보지 않기에 사진으로 인화해 놓는 게 좋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것이고 강제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이어진 포토북 노래를 부르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만들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때는 아마 그간 다녀온 가족 해외여행만 열 곳이 넘게 될 쯤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엄마와 단둘이 다녀온 스페인은 다른 가족들에게도 우리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장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포토북에 들어갈 사진을 선택하고 레이어드에 맞게 배치하고 어울리는 스티커를 붙이고 책 표지와 제목을 정하면 완성이다. 왜 그동안 안 했을까 싶을 정도로 포토북 만들기는 쉽고 간단했다.

포토북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10개월이 넘게 걸렸지만,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본을 받기까지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막상 완성본을 받아보니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엄마와 손 꼭 잡고 걸었던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세비야 메트로폴 파라솔 위에서 불어오던 바람,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느꼈던 감정 모두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완성본을 볼 때도 즐거웠지만 만드는 과정이 정말 행복했다.

지난 여행을 곱씹으며 '이때는 이랬구나. 엄마는 이 모습을 담고 싶어서 셔터를 눌렀구나. 맞아 이때 이랬었지 그래서 내가 카메라를 들었지.'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기억에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엄마의 시선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포토북을 만들다가 문득 그때의 내가 떠올라서 몇십 분 동안은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남겨야 기록이 되는구나. 기록이 남아야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구나.


엄마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놀라기도 잠시, 입을 뗐다.

"딸한테 이런 능력도 있었구나."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능력이 아니라, 사실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능력.

내가 숨겨져 있던 능력을 찾았구나.

어두웠던 방에 불이 켜진 것 같았다.

항상 존재하고 있었는데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던 방.

아직 내가 보지 못한 방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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