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1일. 비 내리는 퇴근길이었다.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에 그녀는 몹시 불쾌해졌다.
‘아침 뉴스에 비 예보 따위는 없었는데. 망할 기상청.’
이런 생각을 하며 회사 앞 편의점에서 3천원짜리 투명한 비닐우산을 사고, 선릉역을 향해 젖은 보도블럭 위를 또각또각 걸었다.
몇 년 전의 그녀는 비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샌들 속으로 발가락 사이를 차갑게 적셔오는 빗물이 좋았고, 우산과 빗소리가 만드는 즉흥적인 운율을 듣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한 우산을 쓰고 곁에 바짝 붙어 걷는 비에 젖은 그의 반대편 어깨를 보는 것이 좋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자 그녀는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벌써 3년이나 된 일이야. 생각한다고 바뀌는 건 없어. 우울해질 뿐이지.’
생각이 다시 떠오르고 우울해하며 멈추는 일이 반복됐다. 그래서 그녀가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챘을 때는 회사를 나온 지 30분이나 지났을 때였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논리적인 사람이었고, 그래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딴 생각을 하다 회사 앞 10분 거리에 있는 선릉역을 지나쳤다 하더라도, 테헤란로를 걷고 있던 자신이 어떻게 30분 만에 면목역 앞에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 면목역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당황스러운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잠깐 이 동네를 걸을지 잠깐 고민을 했지만, 어떤 기대감에 마치 습관처럼 그녀는 면목역 1번 출구 옆길을 또각또각 걷기 시작했다.
익숙한 길이었다. 20대 후반의 2년 동안 수도 없이 걸었던 길이니까. 젊은 부부가 하는 카페와 문이 열린 것을 본 적 없는 철물점, 담배 피는 중학생들이 모이는 작은 공원,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편의점. 그리고 그 앞의 4층 건물. 그가 살았던 집.
‘여긴 왜 왔을까. 지금 와서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짧은 자책과 함께 몸을 돌렸을 때 그녀는 그를 보았다!
원래는 흰색이었을 캔버스화를 신고, 청바지와 짙은 남색 패딩을 입은 모습, 잘 정돈된 헤어스타일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반갑기도 하면서 한 편으론 화가 났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옆에 없다는 이유로 조금이나마 망가진 그 어떤 모습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바짓단이 바닥에 끌려 해어져 있다거나 정돈되지 않아 죄다 솟아오른 머리를 하고 있다거나 하는. 반갑지만 화가 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뒤로 한 채 자연스레 못 본 척 돌아서는 순간,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입술이 열렸다.
“여긴 왜 왔어?”
세상에! 3년 만에 한다는 말이 ‘여긴 왜 왔어?’라니. 잘 지냈어? 오랜만이야. 이런 다정한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그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어 설레었던 자신에게 화를 내며 그대로 길을 돌아 내려왔다. 뒤돌아보는 짓은 하지 않고, 당당하게 걷는 것에 신경을 쓰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