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별 #2

by 윤군

2015년 7월 22일. 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한바탕 폭우라도 쏟아진다면 어제의 그 황당한 기억을 비와 함께 쏟아버릴 수 있을 텐데. 비는 단어 그대로 ‘추적추적’ 기분 나쁘게 내리고 있었다.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퇴근을 준비하며 우산을 들었다.


오늘 아침 그녀는 회사 입사 후 처음으로 지각을 할 뻔 했다.

‘펄튼 우산을 어디에 둔 거지?’

비오는 날이면 항상 챙겼던 우산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신발장 옆 우산꽂이가 아니면 달리 둘 곳이 없지만 우산꽂이에는 어제 산 비닐우산 뿐이었다. 시계가 아침 7시를 넘기자 그녀는 우산 찾는 것을 포기하고 비닐우산을 뽑아들었다.


회사를 나와 우산을 펼치자마자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테헤란로에서,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3천원짜리 투명한 비닐우산을 쓰고 가다니!


‘정말 최악이야.’

자신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는 편이었다. 얇게 먹인 볼터치와 길게 늘인 속눈썹, 눈썹달이 그려진 네일아트는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꾸미지 않아도 넌 충분히 예뻐. 하지만 네일아트 하시는 분도 돈을 벌어야 하니 가끔씩은 하러 가자.”



예쁘단 말을 듣는 적은 많았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 들었던 말보다 달콤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회사를 나오면서 오늘은 어제처럼 딴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우산 하나가 그 계획을 망쳤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는 항상 투명한 비닐우산을 쓰고 나왔다. 그녀는 다른 우산들보다 작은 비닐우산에 비를 다 맞는다며 투덜댔고, 그럴 때마다 그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게 너무 좋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비 내리는 모습보다 그걸 바라보며 기분 좋아하는 그의 옆모습이 더 좋았다. 비 내리는 차가운 공기 사이로 느껴지는 그의 온기도, 말을 할 때마다 그녀의 어깨와 닿아있는 그의 가슴이 울리는 것도, 단어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숨소리도 모두 좋았다.



그 순간은 모든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옆에 바짝 붙어 선 그녀 자신까지 함께. 하늘은 늘 푸르렀고, 지나가는 구름 한 조각, 가로수 위의 새 울음소리, 달이 차오르고 저무는 것마저 모두 의미가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날들이 20대 끝 무렵의 그녀에게 있었다.


‘이 우산 때문이야.’


무생물을 탓하는 취미는 없었지만 그런 말이라도 해서 가라앉은 기분을 풀고 싶었다. 차라리 비를 맞고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에 들고 있는 우산이 점점 더 거슬려졌다. 그래서 우산의 처리 방법(쓰레기통에 버릴지, 지하철 안에 잊은 척 두고 내릴지)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투명한 우산 너머로 면목역 1번 출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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