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별 #3

by 윤군

‘이건 말도 안 돼.’


시계를 보니 30분이 지나 있었다. 다시 면목역 앞이라는 당황감보다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어제 같은 그런 일을 또 겪을 이유는 없어.’

바로 지하철을 타려 했지만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그 속의 차가운 얼음 생각이 간절했다. 근처에 그녀가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지만, 혹시라도 주인 부부가 자신을 알아볼까 역 앞 편의점을 찾았다.


“1,200원입니다.”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익숙했다. 여전히 인사는 하지 않았다.

‘금방 짤릴 줄 알았는데, 아르바이트를 꽤 오래 하나보네.’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는데 유리문 너머로 멈춰선 버스의 영화광고가 보였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 전설이 끝난다. 7월 19일 개봉.]


‘아직도 3년 전 광고를 달고 다니는 버스가 있네. 광고가 새로 안 들어오나?’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잔돈을 받았다. 얼음이 담긴 컵 뚜껑을 열어 액상 커피를 부은 다음, 커피가 충분히 차가워질 때까지 빨대를 휘저었다. 사실 그녀는 커피보다 차가운 얼음을 더 좋아했다. 볼이 시릴 정도로 입 안에 얼음을 가득 넣고 ‘오도독’ 소리가 나게 씹어 먹는 게 좋았다. 웃기게도 그런 습관 때문에 턱관절이 아팠을 때도 있어서, 그는 가볍지만 꾸준한 잔소리로 그녀의 이 사소한 즐거움을 빼앗아 버렸었다. 그 꾸준함 때문에 가끔 혼자 카페에 앉아 얼음을 씹을 때도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깜짝깜짝 놀라곤 했었다.


그는 남자치고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다. ‘하지 마’, ‘이건 안했으면 좋겠어’ 이런 잔소리 뒤에 그녀가 듣고서 기분 좋아질 만한 말을 붙일 줄 알았다. 얼음을 씹을 때면 가만히 그녀의 볼을 간질이며 “그렇게 얼음 깨물어 먹지 마. 나중에 턱 아파서 키스 못하면 나 어떡하라고?” 라고 말한다거나, 언젠가 심하게 말싸움을 하고(그녀가 일방적으로 화냈었지만) 손을 ‘확’ 놔버리자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손을 놓지 마. 난 너랑 손잡고 있는 게 참 좋아.”라고 말한다거나.


시간이 지나 차가워진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비가 와서 안으로 들여다 놓은 스포츠 신문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런던올림픽 - 축구대표팀 세네갈과의 평가전 3:1 승!!]


그녀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 경기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이 경기는 오늘 신문에 나올 이유가 없는 경기였다.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긴 왜 왔어?”


어제는 화가 나고 당황해서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그녀는 그 상황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3년 전, 어쩌면 오늘. 그녀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의 달력을 확인했다. 2012년 7월 21일.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음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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