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니다. 병원에서 일단 하고 있던 목걸이와 반지를 받았다. 이미 침대는 피범벅. 피에 약한 나인데, 심장이 멎은 엄마가 누운 침대에 눅진한 피는 메스껍다는 생각도, 더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직까지 모기도 못 죽일 정도로 생명이 꺼진 모든 것에 큰 공포를 느끼는데 엄마에겐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뽀얗고 부드럽고 말랑한데 평소보다 조금 더 차가웠을 뿐이다. 그래서 ‘이불을 좀 덮어주면 좋겠는데’ 하고 걱정스러운 정도였다.
한정승인 후 신문공고가 5월에 끝났다. 공고를 하는 중에도 사실 조마조마했다. 어디선가 또 모르는 빚쟁이가 나타날까 봐 겁났다. 그러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솔직히 엄마가 빌린 돈도 아닌 돈을 갚기도 싫었다. 보증이라니, 내 인생에는 절대 없을 그것.
엄마 옷 중에 내가 입으려던 것과 나무 옷걸이(내가 예전에 줬던 것)를 아빠가 정신이 없어 다 같이 그냥 버려 버리고, 나도 다른 물건들에는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봤던 유난히 자주 착용한, 그리고 죽던 날까지도 착용하고 있던 반지와 목걸이만은 버리거나 금은방에 가져가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다.
김치는 왠지 먹기가 싫어 미루고 미루다 찌개 몇 번 해먹고 다 버렸다.
뭐 마지막 추억이라거나 아깝다거나 그런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엄마는 자기 병원 갈 돈도 없었으면서 매달 꼬박꼬박 큰 고모부께 용돈을 드렸다. 큰고모부랑 나눈 문자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래선지 엄마가 큰 고모부께 용돈을 드린 게 아깝다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는 내가 자주 찾아뵙고 용돈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아빠한테 줄 것도 모자라 힘들겠지만…
브런치에 쓰는 글들만 보면 내가 아주 힘들게 살았고 지금도 몹시 힘들어 보일 수도 있지만(물론 어느 정도는 맞지만) 좋은 일도 많았고, 지금도 소소하게 즐거운 일들이 생긴다.
크게 없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워낙 크게 감응하는 성격이라, 남들이 “이게 뭐?”, “이게 왜?” 하는 정도의 일들에도 크게 행복하고 기쁘다.
요즘은 포켓볼에 빠져서(이제 막 3번 침) 한 번 가면 2시간씩 친다. 처음엔 공을 치지도 못했는데, 요즘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탁탁 맞아 당구대 구멍에 들어가는 걸 보면 엄청난 쾌감에 휩싸인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 나쁜 일을 겪으면 “그런 일이 있어 지금의 네가 있는 거야. 더 잘 될 거야.”라고 하지만
글쎄, 나는 모르겠다.
나쁜 일은 그냥 나쁜 일이다. 없었으면 더 좋았을 일. 그저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나를 발전시켜 주는 게 아니라, 그 일을 버틸 수 있었던 내가 더 발전된 나를 만드는 것이겠지.
좋은 일만 겪어도 발전할 사람은 발전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