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도박하는 거.
가끔 교도소에 면회 갔던 거.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평범하게 생활했고
항상 웃었지만
언젠가 문득 싫다고 생각했다.
무려 서른이 넘어서야.
아빠는 나에게 심리적으로는(?) 정말 좋은 아빠였지만
다른 아빠들과는 달랐다.
엄마한테 돈을 벌어 갖다 준 걸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가장 남는 일들은
내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어린이날에 책이나 꽃, 인형을 선물해 준 것.
엄마 생일이나 화이트데이에 꽃이나 싸구려 팬티를 선물해 준 것.
그런 것들이 일 년에 한두 번씩 쌓여 아빠를 미화시켰다.
엄마가 죽고, 아빠는 지금도 종종 친구들을 만나 도박을 하는 것 같지만(예전처럼은 아니겠지만)
지금 마음으로는 내가 평생 한 달에 100만 원까지는 도박비용으로 줄 테니
그냥 오래오래 살아만 줘라.
앞으로 최소 20년은 더 살아줘라.
그런 마음이다.
얼마 전에도 100만 원 정도 좀 없냐 전화가 왔었다.
전에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30만 원씩 받을 때,
산림청(아마도)에서 노인들 일자리 2~3달씩 주는 걸 했었는데
그거 하는 거랑 겹쳐서 뱉어내야 한다고 했다.
4달치라 120만 원.
아빠가 20만 원 있으니 100만 원 정도 없냐는 전화였다.
다 갚은 줄 알았던 돈이 다른 형태로 또 튀어나왔고
지금 일하는 곳의 어떤 할아버지가 아빠랑 다른 할아버지를 꼰질렀다는데
같이 일하는 사이에 참, 별 걸 다.
그리고 그 지원금은 한 달에 30만 원이었는데
월세가 35만 원이고
다른 일은 하면 안 되고
가족도 있으면 안 된다.
이게 말이 되나..?
나도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아빠 말만 들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여러 모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아무튼 뭐, 엄마가 죽기 전부터 항상 이런 식의 전화였어서 나는 전화벨만 울리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엄마가 아프든가 강아지들이 아프든가 아빠가 잡혀간다든가 뭐든 일이 터져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전화를 했으니까.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으니 사실 그런 것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니 평생을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살았지만 그래도 그런 전화들은 받을 때마다 심적으로 힘들었다.
어쨌든 좋은 일로 필요한 게 아니라 나쁜 일로 필요했으니까. 정말 항상.
뭐 집을 사려는데 보태줘라, 차를 바꾸고 싶다. 이런 거였으면 아마 신나게 갖다 바쳤을 것이다. 더, 더 좋은 거. 무조건 더 좋은 걸로 하라고.
그나마 다행인 건 내 멘탈이 예전보다는 회복이 좀 빠르다.
지금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내 가족만 있는 게 아니라 연인도 있고 연인의 가족도 있다는 것.
안 좋은 소리는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너무너무너무 싫어해서
폐를 끼치는 것도(직접적으로 그런 건 없지만 내가 내 인생 자체에 자존감이 바닥이 나 있으니까) 너무너무너무 싫어해서
그게 가장 스트레스다.
그거 말고는 뭐, 나 혼자만 생각하면 지금 당장 빈털터리가 돼도 이제 그런 건 너무 많이 겪어서 잠깐 힘이 빠질 뿐이다.
당장 죽어버릴 거 아니면 힘들어할 시간에 또 바짝 벌어야 한다는 거 진작 깨달았으니까.
진심으로 죽을 용기가 있었던 건 스물일곱에 끝났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죽는 게 가장 무서웠을 때 죽음을 실행할 용기가 있었고
죽는 게 무섭지 않아 진 지금은 그런 용기가 없다. 어쩌면 용기가 아니라 의욕일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