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빠는 큰 뇌 수술을 받으셨다. 퇴근길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들었다. 그 당시 형사 말로는 어쩌면 그냥 강도를 당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는데 어떻게 교통사고와 퍽치기가 동시에 가능한 추측이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화려한 범죄 심리 추리는 존재하지 않던 그런 시절. 아빠는 지갑은 물론 손목시계와 반지까지 싹 도둑맞은 채 길 위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몰려와 나를 슬픈 얼굴로 쳐다봤던 것. 나와 6살 터울이 있는 오빠는 눈이 새빨개져서는 방 문을 쾅 닫고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정말 아기였지만 아, 우리 집 이제 망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는 걸 설명 없이도 받아들인 셈이었다.
역시나 나쁜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아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손가락 몇 개를 겨우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슬프게도 엄마는 부지런히 병원을 들락날락했지만 아빠는 전혀 발전이 없었다. 잔인한 시간은 아무 희망도 없이 흘러갔고 나는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다. 언제나 아빠는 1층 안방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계셨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주무셨고 종종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셨다. 그 소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건 그냥 매일매일 들어야 하는 소리였고 그 소리는 숨겨지지 않았다. 우리 집 대문 앞에만 서 있어도 희미하게 들리는, 마치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어두운 지하 괴물의 소리.
아빠는 거의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몇 가지 단어를 수상한 발음으로 표현하셨다. 희미하게나마 기억도 남아 있어서 가끔 손가락에 볼펜을 쥐어 드리면 영어 필기체로 아랍문자 같은 글씨도 쓰셨다. 아빠는 어떤 시험에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수재였다고 한다. 영어도 잘하셨고 글도 잘 쓰셨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아빠가 미웠다. 가슴에 큰 돌이 올려졌다. 나는 새벽 기도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빠가 식물인간이라고 했다. 어린이였던 나에게 식물인간이란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이 생겨난 것인가? 사실 엄연히 따지자면 아빠의 의식은 살아 있었으므로 식물인간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으면 거대한 화분에 심어져 있는 초록색 아빠가 보였다.
도저히 내 머리에서 그 단어를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엄마가 엄마 친구에게 전화로 신세 한탄을 할 때면 반드시 나오던 그 말, 남편이 식물인간으로 벌써 몇 년째냐는.
그냥 사고로 뇌를 다쳤다고 하자고요. 굳이 그 단어를 써야만 했나요? 그건 마치 외계인 같은 느낌이랄까?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게 맞나 싶은 식물인간. 여하튼 어린 나는 그 단어에 강하게 압도 당한채 억지로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우리 아빠가 식물인간이라니.
고약한 상상력은 슬픔의 울타리를 타고 뻗어 갔다. 아빠는 담쟁이덩굴처럼 내 내면의 벽을 채우고 나도 조용한 식물 아이가 되었다.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빠, 여전히 숨만 쉬고 있네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주 자연스러운 아침에
내가 물 한 컵 따라 드렸어요.
긴 빨대를 입술에 붙이니
쏙 물을 빨아들여요.
휴, 다행이다!
아빠는 오늘도 괜찮을 거예요.
꽃은 피우지 않아도 돼요.
눈빛에 작은 기억 하나는 보이니까요.
앙상한 나무,
보랏빛 껍질 틈
애벌레 꿈틀대는 연두핏줄.
그안에 물을 가득 채워 줄게요.
뿌리가 느슨해 지면 안 돼요.
흙을 움켜쥐고 서 계세요.
땅이 움직이는 게 아녜요.
내 어깨가 흔들리는 거라고요.
흔들흔들 어어어!
쟁반 위에 요동치며 앉은
한 컵의 물.
나는 나대로 출렁대고 있으니
견뎌줄래요?
내가 어른이 되는 날까지.
- 6학년 일기장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