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셉트가 변한 건데 이걸 진보라고 말할 수 있나?
나는 종종 책과 태블릿을 들고 스타벅스에 간다. 카페에 갈 때마다 초등학생 이하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혼자 온 건 아니고, 부모님이랑 함께 있다. 부모님은 핸드폰을 보고 자녀는 책을 보거나 태블릿을 본다. 아니면 둘 다 태블릿을 보기도 하고, 둘 다 책을 보기도 한다.
나는 가끔 저렇게 어린 친구들이 스타벅스를 제 집 드나들듯, 카페를 편하게 다니는 모습을 볼 때
저들이 나중에 나이를 먹었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공간을 경험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한다.
다시 말하면, 내 생각에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의 진보가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저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은 인프라와 공간을 이미 누리고 있어서
성인이 됐을 때 인생 곡선이 상승하기보다,
인생이 평평하게 느껴져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차 뒷좌석에 태우고 함박스테이크가 나오는 레스토랑에 가끔 데려가셨다. 그곳은 조도가 낮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입구에서 정장 조끼를 입은 키 큰 웨이터가 있었다. 항상 분홍색 식탁 매트 위에 포크, 나이프가 정갈하게 깔려있는 룸 안으로 안내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랑 동생이 시끄러웠기 때문에 룸 안에 가둔 게 아닐까.) 웨이터는 은색 유럽풍 주전자를 들고 주둥이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곡예하듯 물 잔을 채웠다. 이따금씩 간 식당인데, 나는 그 식당에 간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매우 들떠했다. 어리지만 그 공간이 고급스러운 곳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 레스토랑은 전혀 고급스럽지 않다. 지금은 이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많다. 심지어 고깃집도 럭셔리 콘셉트를 갖춘 곳이 많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돈을 지불하고 훨씬 더 좋은 레스토랑을 갈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 같은 게 있다. 시대도 진보했고, 나도 진보했다는 쾌감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 또 다른 레스토랑의 기억도 있다. 건물 외형이 배 모양인데 들어가면 아늑한 식당이다. 배 모양의 건물은 그리스 해변의 파랑을 컨셉화했다. 당시에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화 속 가게 같은 곳이었다. 어떻게 건물이 배 모양일 수 있지?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고, 식전 음식으로 그릇을 빵이 둘러싸고 동그랗게 솟아있는 앙쿠르트 스프가 그 가게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크리미한 스프도 맛있었지만, 봉긋 솟은 빵을 포크로 빵구내서 바람을 뺸 후 헨젤과 그레텔처럼 조금씩 떼어먹거나, 스프에 찍어먹는 재미에 그 식당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배 모양의 레스토랑은 외곽의 흉물이 되었다. 경기도 어느 먹자골목을 지나갔는데, 오래된 배 모양의 레스토랑 건물이 있었다. 지금도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로 근처를 지나갔을 때 그 배 모양의 건물은 색이 바래 노랗게 변해있었고, 지금 시선으로 보면 외관 자체가 참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저 건물을 생명을 다 한 거 같은데 어떡하지? 누가 매입하지도 않겠다. 쯧쯧. 어렸을 때 나의 눈엔 후광이 비치는 따뜻하고 최고로 좋은 식당이었는데 지금은 골칫덩어리처럼 보였다.
요즘 식당들은 세련된 공간은 물론, 시스템도 훨씬 편리해졌다. 앱으로 주문을 넣는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나, 테이블마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수 있는 ‘테이블 오더’. 요즘엔 식당 테이블 윗면에 붙어있는 QR코드를 인식해서 핸드폰으로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토스 오더’를 도입한 식당도 많다. ‘서빙 로봇’이 돌아다니는 식당도 많고, 예약이나 웨이팅은 ‘캐치테이블’이나 ‘테이블링’으로 한다.
내가 볼 땐 현재 외부 공간의 인프라나 시스템이 이미 너무 좋은데 저 친구들이 커서 경험할 공간은 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진보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공간이란 게 나아져봤자 더 나아질 게 뭐가 있을까? 이런 걱정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회사 앞에 새로 생긴 카페형 파리바게트 가게에 앉아있다. 새로 오픈한 가게이지만 아이보리와 우드톤으로 조성된 가게 내부가 아늑한 거 같아서 들어왔다. 가죽 의자도 푹신해 보이고. 조도도 따뜻해서 좋아 보인다.
앗! 이런 건가?
나는 이 가게를 좋다고 말하는데, 새삥해서가 아니라 아늑해서라고 말했다.
옛날 파리바게트의 카페석 같았으면 파란색과 회색 톤으로 꾸며졌었고 약간 차가운 느낌이었다. 콘셉트와 컬러가 변했는데 나는 이 공간이 진보했다고 느낀다.
어? 컨셉이 변한 건데 이걸 진보라고 말할 수 있나?
지금 내가 있는 카페라는 공간은 새것이지만 과거에 비해 최첨단 인프라로 진보한 것은 아니고, 그저 컨셉이 변했다. 20년 전에는 아파트 몰딩이 체리색이었지만 지금은 촌스러운 체리 몰딩을 감추려고 밝은 톤으로 리모델링을 한다. 20년 전 LG디오스 냉장고엔 장미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지만, 지금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엔 아무런 무늬가 없다.
이런 변화는 옛날 것은 낮은 것, 지금 것은 높은 것이라 표현할 수 없다. 단지, 평행하게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취향, 트렌드가 변한 것이다. 시대 감성이 변한 것이라고나 할까.
음… 그럼 내가 저 어린 친구들을 걱정할 게 없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감성이 새로 개발될 뿐이고, 새로운 게 있으면 이전에 전성기를 누렸던 감성은 사라질 수 있을 뿐이라면, 평행적으로 확장하는 것. 영역이 이동한 것뿐이니까.
신생 가게들은 럭셔리하고 시스템이 좋은 가게 많지만, 신생 가게의 위협에도 굳건한 노포들이 여전히 많다. 내가 학교 행사로 일 년에 한두 번씩 가게 되는 장충동 ‘평안도 족발집’은 아직도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다. 사장님은 종이로 장부를 적는다.
스타벅스를 밥 먹듯이 이용하는 저 어린 친구들은 내가 어렸을 때 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사는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이 성인이 됐을 때 공간과 인프라는, 저 친구들의 감성과 취향을 반영해서 변할 것이기 때문에 저들은 저 나름대로의 만족, 행복, 효능감을 가지며 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해를 거듭하며 연도는 숫자가 커지지만, 우리가 누리는 공간은 생각보다 그대로구나.
물론 편리한 시스템은 가게에 적용되어 있지만 그게 우리가 그 가게를 선택하는 동기는 아니다.
감성, 소재, 콘텐츠가 중요한 거지.
저 어린 친구들이 나중에 커서 어떤 감성과 공간을 좋아하게 될지 궁금하다.
나는 이제 집에 가서 일을 마무리하고 자야겠다.
2026.4.14. 잠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