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연둣빛 수납장.

초여름 속 연둣빛.

by 윤민아




| 마음을 모아둔 연둣빛 일기장.|


초여름.

연두잎을 타고

천천히 자라나는 꿈.






저는 이곳에

제가 오래 품어온
계절의 꿈을
조용히 기록하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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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연둣빛 수납장.


연경이는 칠 년 동안 붙들고 있던 꿈이 무너진 뒤, 긴 시간을 타로와 신점에 기대며 살고 있었다.
점괘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을 다잡았고, “이 길은 끝났다”라는 말을 들으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연경의 얼굴에는 늘 알 수 없는 기다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런 연경을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혔다.그건 단순한 연민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 역시 같은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마 나는 묵묵히 내 안을 가꾸며, 언젠가 다시 피어날지도 모르는 꿈을 고상하게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존중하는 방식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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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과의 만남은 모든 생각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부터인지 나는 어떤 색과 단어가 끌렸다.
‘연두.’

처음엔 가벼운 상상이었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이름은 점점 선명해졌다. 낯설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끌렸다. 연두라는 말 속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자라나고 있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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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내 시야에는 연둣빛이 자꾸 들어왔다. 산책길에 돋아나는 새잎, 창가를 스치는 햇살,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모든 초록이 이전보다 또렷해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초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의 수줍은 빛과 여름의 강렬한 기운이 교차하는 시간. 모든 것이 자라나는 초록의 계절. 나는 그 계절을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계절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꿈을 품게 되면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게 되었다. 한 장, 한 장마다 바람 같은 기대가 묻어났다.











초록빛은 연둣빛으로 번지며 내 안의 가능성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비록 여러 번의 실패와 멈춤이 있었지만 그 과정은 내 안에서 잉크처럼 번져갔다. 그것이 좌절인지, 배움인지, 성장통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들이 나를 잠시 멈춰 서게 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늘 앞만 보며 달려왔다. 성과와 결과, 인정과 속도만을 바라보며. 그러나 꿈은 나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왜 조급했는지, 왜 흔들렸는지, 왜 쉽게 낙심했는지. 이해가 되자 나 자신에게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확장되기 시작했다. 지나온 실패들, 미뤄둔 시도들, 나를 응원해 주던 사람들의 얼굴까지 하나씩 떠올랐다. 나는 깨달았다.











꿈을 이루는 일은 무언가를 쟁취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 후로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장면을 담는 대신 마음을 담으려 했다. 초여름의 나무 그늘을 찍을 때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떠올렸다. 연둣빛 풀잎을 담을 때면 아직 여린 존재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카메라는 이제 내가 어디까지 자라왔는지 보여주는 거울이 되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 무언가를 향해 두근거리는 감정이야말로 내가 풀어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이야기라는 것을.

꿈을 품었던 순간, 그 마음의 결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계절처럼 모든 것은 흘러간다. 꽃은 피고 지고, 잎은 돋고 시들고, 여름은 가을로 넘어간다.











좌절도, 설렘도, 기다림도 결국 흐른다. 그리고 흘러간 자리에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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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믿는다. 모든 것은 결국 괜찮아진다는 것을.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음 성장을 위한 준비일 뿐이라는 것을. 언젠가 나는 ‘연두’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것이다. 지금은 가슴 깊이 아릿한 시간일지라도 그것은 초록빛처럼 부드럽게 변할 것이다.












초여름의 빛깔처럼, 따뜻하고 선명하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나의 꿈을 기록하고, 계절의 흐름을 담는다. 그것이 곧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기록들이 쌓여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다림 속에서 흔들리는 사람에게,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혹은 자기 자신을 잠시 잊고 달려온 사람에게. 초여름의 초록빛 연두처럼. �























**이 글의 여운을 초여름의 연둣빛으로 담았습니다. 아이폰 배경화면으로 내려받아, 하루의 시작과 끝에 이 마음을 조용히 꺼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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