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안에 나의 기록.
| 마음을 모아둔 연둣빛 일기장.|
초여름.
연두잎을 타고
천천히 자라나는 꿈.
저는 이곳에
제가 오래 품어온
계절의 꿈을
조용히 기록하려 해요.
_여름의 자리에 남겨진 마음.
나는 느꼈다.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하던 시점부터, 내가 붙들고 있던 하나의 꿈이 서서히 멀어지고 있음을. 꽃이 지듯 내 안에서 선명하게 피어 있던 확신이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었다.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변화였다. 계절이 바뀌듯, 꿈의 온도도 그렇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창밖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계절이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나의 방향 또한 그 안에서 겹쳐 읽혔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바람은 더워졌고, 빛은 강렬해졌다. 밝아지는 계절과 달리 내 안의 확신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흔들림 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자라기 시작했다. 꿈이 잠시 멀어진 자리에, 나는 홀로 뜨거운 여름을 맞이했다.
햇살은 유난히 눈부셨고, 매미 소리는 찢어질 듯 선명했다. 세상은 활기찼지만 내 안은 고요했다. 대신 그리움이 자라났다. 처음엔 아주 작은 새싹이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에 대한 그리움, 이루고 싶었던 미래에 대한 갈망.
그 잎사귀는 생각보다 빠르게 번졌다. 감당하기 벅찰 만큼. 그렇게 감정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울적할 때마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있다. 도심 한쪽에 자리한 오래된 공간. 세월이 겹겹이 쌓인 벽돌 건물이다. 바랜 색, 갈라진 틈, 오래 남은 흔적들.
그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인다. 수차례의 계절을 버텨낸 존재가 나를 조용히 말없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이 건물도 수많은 여름을 지나왔겠지. 무너질 것 같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서 있다. 그 공간 앞에서 나는 배운다. 버티는 것도 하나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희망은 늘 양면을 가진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야’라는 기대가 나를 숨 막히게 할 때도 있고, ‘혹시 안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나를 붙잡을 때도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희망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멈췄을 것이다. 희망은 날카롭다. 나를 아프게도 하지만, 동시에 다시 일으킨다.
꿈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잠시 죽는다. 자신감이 무너지고, 방향을 잃고,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숨을 쉰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불씨처럼. 나는 이제 안다.
하나의 꿈이 식어가는 자리에 또 다른 꿈의 씨앗이 심어진다는 것을. 사진을 찍는 순간,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난다. 카메라는 나의 고백이고, 글은 나의 기도다. 누군가에게 닿지 않아도 괜찮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여름은 결국 지나간다. 매미 소리도 잦아들고, 뜨겁던 햇살도 물러난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듯, 내 꿈의 형태도 바뀔 것이다. 나는 이제 사라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변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은 기다림의 여름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고, 방향은 흐릿하지만, 뿌리는 깊어지고 있는 시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래된 공간 앞에 선다. 숨을 고르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붙잡히지 않는 미래를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나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고. 시간을 머금은 꿈은 언젠가 새로운 빛으로 물들 것이다.
나는 그럴 거라 믿는다.
**이 글의 여운을 초여름의 연둣빛으로 담았습니다. 아이폰 배경화면으로 내려받아, 하루의 시작과 끝에 이 마음을 조용히 꺼내보세요.**
블로그에서 만나실 수 있어요.
https://blog.naver.com/mollaebon/224153559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