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스치는 이름.
| 마음을 모아둔 연둣빛 일기장.|
초여름.
연두잎을 타고
천천히 자라나는 꿈.
저는 이곳에
제가 오래 품어온
계절의 꿈을
조용히 기록하려 해요.
바람에 스치는 이름.
참외향은 초여름이 추억으로 건네는 초대장 같다. 그 향을 맡는 순간, 햇빛이 조금 과해지기 시작하는 한낮의 공기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면 필터가 살짝 깔린 것처럼, 연둣빛 여름 장면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초여름 바람에 잎사귀들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에 맞춰 나 역시 오래 품어온 꿈을 떠올린다. 그렇게 흔들림을 하나씩 모아 보면, 끝에는 늘 내가 바라는 미래의 자리가 생긴다.
초여름 안에서 나의 꿈을 생각하며 걷다 보면, 시선은 자꾸 오래된 풍경에 머문다. 옛 주택의 옥상에서 키우는 식물들, 시간이 묻어 있는 아파트 벽면, 도로 위에서 낡게 빛나는 신호등. 나의 꿈과 전혀 상관없는 장면들인데도, 나는 그 풍경 안으로 나의 바람을 밀어 넣고 사진을 찍고 기록한다. 이렇게라도 하면 꿈이 조금 더 구체적인 모양을 가질 것 같아서.
버스와 지하철, 어딘가로 나를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나는 습관처럼 속으로 빈다. 내가 향하는 마지막 정착지에 내가 꿈꾸던 꿈과 조우하기를, 한 번쯤은 내가 상상하던 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기를.
이제는 안다. 마음이 바라는 만큼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날도 있다는 걸.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그럴 뿐이고, 끝은 아니니까. 언젠가 이 길의 끝에서 나는 더 온전한 웃음을 지을 거라 믿는다. 생각해 보면 나와 나의 꿈은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는 무너질 듯 가까워졌다가도, 슬쩍 멀어지는 방식으로만 거리를 조정해왔다.
꿈은 초여름의 구름 같았다. 닿을 것 같아 손을 뻗으면,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공기 속에는 늘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가능성. 시작도 끝도 아닌 자리에 서 있는 ‘0’ 같은 자리.
한때 나는 꿈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자주 계획을 세우고, 자주 다짐하며 뜨겁게 달리던 시간. 하지만 나의 어쩔수 없는 생계문제와 현실이 조금씩 팽창해갈 때, 나의 꿈은 자연스레 궤도를 비켜섰다. 누구도 “포기”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눈치챈 것처럼. 그것이 나의 시간이고, 내가 배운 방식의 기다림이었다.
나는 꿈이 멀어진 날에도, 내 현실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세상을 미워하는 순간, 나까지 함께 작아질 것 같아서. 대신 나는 침묵 속에서 나를 단단히 다듬어가기로 했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간절히 바랐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여전히 나는 나의 꿈을 떠올리며 방황 속에서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낸다. 내가 이렇게 견디며 살아가는 건, 내가 그리고 있는 연둣빛 미래가 어쩌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기때문이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쉽게 꺼지지 않는 확신. 작은 불씨처럼 오래 남는 희망.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새로운 페이지를 열게 된 것도 결국 나의 꿈 덕분이었다. 그 꿈은 나를 때로는 지치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다시 삶 위로 떠오르게 해 주었다. 이제 나는 조급하게 붙잡는 대신, 그 꿈이 내 안에서 자라도록 돌본다.
참외향처럼 짧고 선명한 순간들을 사진과 글로 담아내며, 내가 원하는 삶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선택해 보려 한다. 신호등이 바뀌는 찰나처럼, 나의 방향도 언젠가 선명해질 것이다. 초여름은 매년 다시 오고, 연둣빛은 다시 자라난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나아진 내가 되어 이 길의 끝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끝에서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꿈과 조용히 손을 맞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