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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Jul 17. 2023

우리 집 밥상에는 언제쯤 평화가 깃들까

삼백육십오일 하루 세끼를 꼬박 먹는 집

    ‘평화가 깃든 밥상’

  연희동 주택가에 위치한 요리 연구소의 이름이다. 어떻게 하면 밥상에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 365일 하루 세끼를 꼬박 준비하면서 우리 집 밥상에 평화가 깃든 날은 얼마나 될까. 혹시 하루 두 끼가 허락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면 평화는 날마다 따라올 수도 있겠다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서울시 주최 ‘자연과 한 달 살기’ 프로젝트에 운 좋게 선발되었다. 열 명 남짓한 회원들과 참여한 지 벌써 두 번째 시간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실습에 들어가기 전, 강의부터 들었다. 대한민국 모든 주부들에게 '간단한 밥상 차리기'를 전파하는 것이 이곳의 목표라 한다. 세끼 식사에 '단순화'가 적용된다면 하루 24시간의 효용성이 얼마나 커질까. 귀가 솔깃한 얘기다. 듣기만 해도 벌써 마음이 평화롭다.


  효소를 기본으로 한 찬과 장김치만을 활용한다는 발상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TV 건강 프로에 영양학 박사들이 출연하여 발효식품을 적극 추천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건강과 시간, 두 마리 토끼를 두루 챙길 절호의 기회다. 오늘은 참기름과 생겨자를 버무린 묵은지로 김밥을 만드는 요리다. 곁들인 메밀국수의 국물은 장아찌 국물을 활용했고, 고명으로 파프리카를 곱게 다져 얹는다. 거기에 장김치 몇 가닥을 찬으로 내놓는다. 회원들은 일찌감치 손에 평화를 거머쥔 듯, 해맑은 표정으로 김밥 마는데 열중했다.


  재료도 소박하고 방법도 간단해서 요리는 금방 끝났다. 순식간에 정갈한 식탁이 차려졌지만 반찬 가짓수를 신경 쓰는 집이라면 평화 대신 전쟁이 터질지 모를 차림새였다.  일 년 내내 하루 세끼를 밥과 국, 3첩 반상 이상을 기본으로 하는 집에서는 많이 허전할 수 있는 식단이었다. 수십 년 몸에 밴 사고가 바뀌지 않는 이상, 오늘 요리는 집집마다 호불호가 갈릴 테다. 평범한 주부 입장에서 다양한 요리법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인류의 출현 이후 먹고사는 문제는 생명과 직결되기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살며 재택근무나 휴교로 인해 집집마다 가정 주부 역할이 배로 커졌다.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점심 먹고 돌아서면 저녁 준비에 힘이 부쳐 울상을 지었다. 식사 준비로 인해 불화가 생기고, 불미스러운 사고로 이어졌다는 뉴스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배달시켜 먹는 음식도 유행한다지만 아직은 익숙지 않아 하루 세끼를 다 챙겨야 하는 나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저녁은 초간단이다.'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배운 대로 따라 하기를 서둘렀다. 얼른 묵은지를 꺼내어 생겨자와 참기름으로 무쳤다. 김 위에 밥을 깔고 묵은지 속을 넣은 다음 돌돌 말았다. 속 재료가 빈약하여 김밥 옆구리 터질 염려는 애당초에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칠하고 통깨를 톡톡 뿌렸다. 접시에 소담지게 담아 식구들을 얼른 불러냈다.


  '연구소까지 원정 가서 배워왔으니 얼마나 맛있을까?'

  잔뜩 기대에 찬 식구들이 하나둘 김밥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어라, 김밥은 들어갔는데 감탄사가 바로 나오지 않네.'

  평소 같지 않게 아무 말이 없이 어색한 표정이다. '맛있다'라는 말 대신 '희한한 김밥 다 보겠네'라고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역시 우리 집에서 김밥으로 인정받으려면 옆구리가 터져도 좋으니 속재료를 많이 준비해야만 한다. 발효식품이 아무리 건강에 좋다 하더라도 초간단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구한 역사가 흐르기 때문이다. 아장아장 걷던 애기 때부터 유치원을 거쳐 고등학교 소풍 가는 날까지 빠지지 않았던 '엄마표 김밥'. 가족 소풍을 갈 때도 어김없이 배낭 속에 담겨 따라다녔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삼 시 세끼를 제대로 갖추기란 쉽지 않다. 나도 '간단한 식탁 차리기'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엄마표 김밥'한테 퍼붓는 감탄사에 취해 아직까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사는 한 한 끼의  식사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혼기가 꽉 찬 우리 아이들이 독립하는 날, 비로소 우리 집 밥상에도 평화는 깃드리라. 나는 남편 가슴을 향해 '우리 집 밥상에 평화를 주시오'라는 깃발을 내리꽂는다. 된장국에 밥 말아, 고추장에 풋고추 찍어먹던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번거로운 음식 대신 누룽지탕에 나물 하나, 김치 한쪽으로도 거뜬히 살아낼 자신이 있다고. 

  우리 집 식탁에 빠른 평화를 위해 모사라도 꾸미고 싶지만 아이들이 서운해할까 봐 속으로만 물어봤다.  

   

   '얘들아, 독립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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