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선여인 Jul 26. 2023

술맹(酒盲)의 변(辯)

잔을 높이 들며 외치자. '위하여"

문우의 등단을 축하는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 조금은 어색한 기분으로 앉아있자니 술이 들어온다. 점잖게 앉아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동한다. 술을 따르고 잔을 높이 치켜들며 ‘위하여’를 외치는 건 어느 자리에서건 법으로 정해진 순서인가 보다.


  술병이 돌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겨운 대화가 오간다. 남녀가 따로 없이 받으시오, 따르시오 하는 사이에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무르익어간다. 귀퉁이에 앉아있던 나는 입에 대는 시늉만 하고는 슬며시 잔을 내려놓는다. 누가 볼세라 얼른 청량음료만 홀짝거린다. 그때 어디서 날아왔는지 뒤통수에 찰싹 달라붙는 지청구 소리.

  “아니, 술 한 잔도 못하는 사람이 문학한다고 할 수 있어?”

  몸을 바짝 오그라들게 한다.


  엄마는 철 따라 진달래, 솔방울, 매실, 포도, 모과로 술을 담갔다. 언젠가부터 건강에 좋다는 마늘, 칡, 쑥으로도 담가 높은 선반 위에 두었다. 형제들의 생일이나 반가운 손님을 초대할 때마다 그 많은 술병들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가족을 위해 술을 담그고, 친척과의 우애를 위해 술상을 준비했지만 술을 입에 대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여자는 술을 해서 안 된다는 집안 분위기에 의해 지금껏 잘 지켜왔다. 가끔 술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눈치껏 빠지거나 적당히 둘러대어 얼마든지 순탄하게 지내왔다. 나름대로 머리를 써본 적도 있다. 술상 밑에 빈 그릇을 미리 챙겨두는 것이다. 술잔을 받으면 쥐도새도 모르게 재빨리 쏟아붓고는 시치미를 뚝 떼는 여유도 부려봤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 술을 건넨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니, 내 술잔은 어디서 잠자고 있나?”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망설이는데 함부로 남자에게 술을 따르는 게 아니라고 하던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내심 그 말을 하고 싶으나 지금이 어디 조선시대냐고 핀잔을 할 것 같아 못 들은 체하고 딴전을 피웠다. 그때 옆 사람이 내 옆구리를 꾹 지른다. 술잔을 받아놓고 상대에게 권하지 않으면 주도에 어긋난다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게 아닌가.


  술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고, 술이 빠진 모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술 예찬론자들. 술은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황폐해진 영혼에 단비를 내리게 한다고 목청 높여 받든다. 그동안 술맹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술 예찬론자들 앞에 서면 잔뜩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술을 입에 대보지는 않았지만 나의 술버릇을 이미 알고 있다. 대학 근처에서 자취하던 친구가 포도주를 담가놓고 망년회를 한다며 불렀을 때이다. 투명한 유리잔에 자주 빛깔의 포도주를 연신 마셔대는 친구들 사이에 나는 항아리를 끼고 앉아있었다. 잠시 후 술에 취한 사람은 술을 마신 친구들이 아니라 흐물흐물한 포도 껍질을 심심풀이로 빨아먹던 나였다.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나, 실실 웃지를 않나 가관이었다고 친구들은 전해주었다.


  목석처럼 앉아있는 내게 누군가 또 술을 따라준다. 살갑지 못한 내게 관심을 가져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마음이 괴롭다. 술잔을 받아 들고 마시는 체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얼른 상 밑으로 쏟아부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꽥하고 소리를 지른다.   

  “아니, 피 같은 술을 왜 버리나?”


  완전히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다. 맥이 쭉 빠져 바작거리는 목을 적시느라 애꿎은 안주만 축내면서 어느덧 축하 모임이 파했다. 등단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넘치는 술잔만큼이나 찬사를 보내고 싶지만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술의 힘이라도 빌어 호기 있게 축하의 말을 건넸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조선시대 같으면 술 못하는 내가 양가집 규수일 테지만 지금은 어디 그러한가. 남녀가 평등하여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도둑질 빼고는 무엇이든 할 줄 아는 여성이 대우를 받는 세상이다. 술 못하는 나를 내숭을 여기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터라 오늘따라 엄마의 가르침에 반기를 들고 싶다. 늦었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술과 타협하여 어느 모임에서건 당당해져 볼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운전대가 한결 무겁게만 느껴졌다. 늦은 시각에 웬일로 길이 밀리나 했더니 경찰이 차를 멈추게 한다. 죄지은 것도 없이 도로에 세워진 마네킹 경찰만 봐도 오금이 저린 터라 숨이 턱 막혔다. 창문을 열자 갑자기 시커먼 것을 코앞에 들이대며 불라고 한다.

   ‘아, 이런 게 음주 단속이로구나.’

  당당하게 있는 힘을 다해 훅, 하고 불었다. 예상대로 무사통과다.


역시 엄마가 옳았구나, 생각하니 술기운이 아니더라도 콧노래가 절로 온다. 조선시대 보다 더한 고조선 여자라 놀려대면 어떠리. 술잔 앞에서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니 여자로서 살가움이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해도 좋다. 현대 시대와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해도 이 길이 내게는 잘 맞는 것 같다. 대신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않는다는 미덕으로 어느 자리에서건 분위기만은 깨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여름의 끝자락에,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랏빛 포도로 술을 담가야겠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있을 나눔의 자리를 떠올리며. 술이 잘 익으면 분위기 없는 여자와 사느라 술 한번 맛나게 마셔보지 못한 남편을 위해 잔이라도 부딪쳐야겠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쳐야지.

  “위하여!”

작가의 이전글 사라진 아리랑 고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