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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Jul 30. 2023

서태지의 고향은 소격동

내가 살던 고향은 모래내

  늦은 밤 찻길을 달려 친정으로 향한다. 라디오에서는 '소격동'이라는 노래가 나지막하게 흐른다.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서태지의 음악이다. 곡 전체에 깔린 아련한 분위기가 짙은 밤안개와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 소리 예쁜 이 마을에서 살 거예요.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서태지의 노래 '소격동' 중)


서태지가 종로구 소격동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한옥 보존 구역이었으나 지금은 북촌, 서촌마을과 함께 관광특구가 된 곳이다. 어린 시절에 놀던 놀이터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온통 상점과 카페가 들어찼다. 그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으면 음악으로 표현해 냈을까. 그 허전하고 안타까운 느낌을 가슴 절절한 가락과 노랫말로 빚어냈으니 역시 음악가다운 정신이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엮어내는 곡조와 추억을 회상하는 가사말이 잘 어울려 공연히 내 마음까지 울렁인다.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친정 동네가 얼마 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뉜 동네 중 내가 살던 아랫마을이 뉴타운이라는 거대한 이름으로 한창 탈바꿈 중에 있다. 주택과 가게가 한데 모여 있던 자그마한 마을이 거대한 도시로 변해 간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치솟는 건물을 밤에 보면 마치 영화 속 우주정거장처럼 냉랭해 보인다. 막바지 공사를 위해 여기저기 쌓아둔 자재들이 오늘따라 적막한 무덤처럼 낯설게 다가온다.


가로등은 변함없이 사방을 비춰주고 있지만 새로운 도로가 뚫려 예전의 길목은 여간해서는 분간하기 어렵다. 길눈이 어지간히 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디가 어딘지 몰라 헤매기 일쑤이다. 나도 도로 한복판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멈춰서 있을 때, 윗마을을 보고서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아! 윗마을이다.'


옛날 그대로인 골목길을 올려다보는 순간, 변하지 않은 모습에 탄성을 질렀다.  나침반 삼아 그 골목길을 따라가니 방향감각 되살아나는 듯했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 얼굴도 떠올랐다. 키가 작고 통통한 볼에 보조개가 살짝 들어간 아이였다. 서로 살가운 말을 나누며 숙제를 함께하는 사이로 그 집에 몇 번 가본 적도 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먼발치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막다른 집이었다.

 

윗마을로 가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시끌벅적한 아랫마을에 비해 고만고만한 크기의 집들이 서 있는 윗마을은 언제나 깨끗하고 조용했기 때문이다. 빨간 지붕을 얹은 양옥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삐그덕하는 소리와 함께 청색 대문이 열렸다. 마당 안으로 첫발을 들이밀 때, 두근거렸던 감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담 밑에 작은 화단에는 꽃들이 만발했고, 마당 한가운데에는 깔끔한 수도가 있었다. 살짝 열린 부엌문 틈으로 윤기를 뽐내 양은솥단지 왜 그리도 가슴을 설레게 했지. 거울이 달린 서랍장과 작은 책상을 갖춘 독방에 있 친구가 몹시 부럽기만 했다. 하늘색 페인트칠로 단장한 말로만 듣던 수세식 변소를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벽에 걸린 하얀 알약에서 나오는 소독냄새마저도 아카시 꽃향기처럼 달콤했다.




밤늦은 시각, 친정 가는 길에 바라본 윗마을 골목길. 빨간 지붕의 양옥집들이 아직도 올망졸망 나란히 붙어 있다. 골목길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묵묵히 건설현장을 내려다본다. 뉴타운이다, 신도시다 하여 지금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는 현실에서 옛 것을 그대로 지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서태지 노래에는 시냇물에서 가재 잡고 물장구치며 놀던 유년 시절의 그리움이 그대로 담겨있다. 연일 장사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동네, 자연을 품었던 예전의 소격동으로 되살리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녹아있다. 음악은 끝났지만 내 귓가에 맴도는 노래 가사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내 유년시절의 추억이 짙게 녹아있는 모래내. 나도 그 아늑한 골목길을 오래도록 놓치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낮게 흥얼거려 본다.


 "… 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잠들면 안 돼요. 눈을 뜨면 사라져요.…" (서태지의 노래 '소격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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