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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Oct 07. 2023

무심코 받은 돈

나눠먹어야 사람이지

  아버지 생신에 상차림을 하려고 식구들이 일찍 모였다. 음식 담느라 분주한데 엄마가 바지 주머니에 무언가를 꾹 찔러 넣었다. 누런색 얇은 봉투 끝머리가 주머니 밖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엄마는 눈을 꿈적하며 손가락으로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른 식구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일단 재빨리 안으로 봉투를 욱여 넣었다. 음식을 담으면서도 이미 복잡해진 내 머릿속은 차분해지지 않았다.

‘무얼까?’

돈으로 짐작은 되었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받을 만한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식탁 둘레가 시벅적한 토론장으로 변다. 오늘 생일을 맞이한 분은 아버지인데 화제의 인물은 따로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버지한테 돈 이천 원을 타 가지고 시장에 다녀왔던 지난 얘기를 풀어놓는다.

“요즘 세상에, 이천 원이 돈이야?”

“아버지, 돈을 좀 넉넉히 주셔야죠.”

“그러게 말이야. 정말 너무 하시네.”


아버지를 향한 타박이 동생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빙그레 웃기만 하던 아버지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 보따리를 펼친다. 천 원에 네 개 하는 오이를 사 오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씩 나눠주고 나면 집으로 가져올 수 있는 건 겨우 한 개라고. 엄마라는 사람은 여기저기 마구 퍼주기를 좋아해서 수중에 돈이 많으면 안 된다고 입막음한다. 이에 굴복하지 않는 엄마는 자신의 '나눔 철학'에 대한 논리로 반격을 가한다.

 

“나 혼자만 먹으면 돼지지. 콩 한쪽이라도 서로 나눠 먹어야 그게 사람이지.”

이쪽저쪽에서 화살 공격을 받 아버지는 신만의 경제 논리를 펼치며 뚝심 있게 자식을 설득시킨다.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될 줄 알고 돈을 함부로 써?”

어느 한 사람도 아버지의 구두쇠 작전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누런 봉투부터 꺼내 보았다. 짐작대로 역시 돈이었는데 엄마 수준에 비춰보아 꽤 큰 액수였다.

‘돈 버는 내가, 돈을 타 쓰는 분한테 이걸 받아?’

겨우 몇 천 원으로 시장에 다녀온 분한테 돈을 받았다는 게 하도 어이가 없어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속도 상하고 애가 타서 얼른 전화를 드렸다.


전화기 너머에 들리는 엄마 목소리는 활기차 보였지만 음색은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빛이었다. 며칠 후 이종사촌 언니의 딸이 결혼하는데 옷 한 벌 사 입고 참석하라는 말씀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주름살 하나 없이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그 언니를 늘 부러워했던 엄마다. 반면 멋도 내지 않고 무심히 세월 보내는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좋은 옷이라도 입고 결혼식장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이 담긴 돈이었다.


예전에는 백화점 출입도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비싼 옷은 절대 사지 않는다. 남편이 은행을 퇴직한 뒤부터인지, 딸아이가 유학 간 뒤부터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어쩌다 눈에 띄는 옷이 있어도 선뜻 사지 못하고 쭈뼛거리다 만다. 멋스러움에 관심조차 줄어들기 시작해 옷에 심드렁해진 이유도 한몫한다. 그러다 보니 털털한 옷매무새가 아예 몸에 배어 버린 게 아닐까.


무슨 일이든지 하고자 하는 욕심이 많고, 지기 싫어하는 딸아이가 어느 날 유학 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진로를 설계하면서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 무조건 존중하고 밀어주기로 했다. 자식을 유학 보낼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배움에 대한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대신 훗날, 후회 없는 선택이었노라 자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랐다.


자식 교육은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한다고 엄마는 늘 강조해 왔다. 배움에 대한 갈망을 사그라들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손녀의 유학길을 십분 이해했다. 직장 다니는 나를 위해 두 아이를 손수 기르셨기에 손녀에 대한 정이 남달랐다는 것도 영향이 컸다. 시대를 잘 타고났더라면 향학열을 마음껏 발산하며 세상에 커다란 업적 하나는 남겼을 만큼 지혜로움을 가진 엄마다.


자식을 유학 보냈으니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것이 당연하지만 남들은 모를 터이다. 차라리 ‘나는 원래 멋 부리지 않는 여자입네,’ 하며 당당한 척해왔다. 하지만 엄마는 내 속을 훤히 꿰뚫어 보면서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았다. 당신은 철저히 절약하면서도 닮아가는 딸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속이 상하셨나 보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걱정만 끼쳐드리나 하는 죄스러움에 기분이 울적했다.


한 푼 두 푼 바짝 아끼고 모으느라 꼬깃꼬깃해진 돈을 무심코 받고 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엄마의 뜻대로 멋진 옷을 사 입고 결혼식장에 가야 할지, 차라리 엄마 옷을 사드리는 게 좋을지 잠시 생각해 본다. 어느 쪽이건 나에 대한 엄마 걱정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족하겠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웃음을 엄마 얼굴에 담는다면 무얼 더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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