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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Oct 10. 2023

이사하는 날

인정의 꽃이 피는 새로운 터전

   동생이 신접살림을 시작하는 날이다. 요즘 팥죽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말려도 엄마는 기어코 팥죽 쑬 준비를 한다. 팥알을 씻어 물을 붓고 한참을 끓이자 딱딱한 알갱이가 통통해지면서 특유의 향을 낸다. 물렁물렁해진 알을 으깬 뒤 진국만 걸러내어 불려놓은 찹쌀을 넣고 푹 끓이기 시작한다. 죽 쑤는 게 별로 어렵지 않네,라고 생각하는 내게 엄마는 커다란 나무 주걱을 들려주며 말했다.

“젓기에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큰 낭패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솥단지 안에서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야단법석이 났다. 정말 제 맘 내키는 대로 사방팔방으로 튀어대니 잠시도 한눈팔 겨를이 없다. ‘변덕이 팥죽 끓듯 한다.’라는 속담이 저절로 떠오른다.

팔이 아프도록 젓다가 너무 힘이 들어 잠시 쉬는데 쌀알이 퍼질 때까지 계속 저으라고 채근한다. 특히 솥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한다.

‘세상에, 이사 때마다 이토록 힘들게 쑨 죽으로 동네잔치를 했더란 말인가.’


팥팥거리는 소리를 내며 인정사정없이 튀어대는 팥죽을 젓고 있자니 며칠 전 이사한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아파트 15층을 오르내리며 시루떡을 돌리는데 별의별 사람이 다 살더라는 것이다. “떡 좀 잡숴 보세요”하고 초인종을 누르니 “우리는 떡 안 좋아해요.” 하며 얼굴도 내밀지 않더란다. 심지어 “밖에 놓고 가세요.” 하며 문도 열어주지 않은 집이 있었다고 한다.


손으로는 주걱을 돌리면서 입으로는 연신 호들갑을 떠는데 엄마는 내 말을 못 들은 체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이사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팥죽을 쑤며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어떤 마을에 떠꺼머리총각이 갑자기 죽었는데 그 넋이 집 둘레를 서성이며 동네 사람들을 해코지했더란다. 무서움에 떨던 마을 사람 중 한 아낙네가 어느 날 팥죽을 먹고 있는데 대문 밖의 총각 귀신이 팥죽을 보자마자 줄행랑을 쳤다지 뭐냐. 그 뒤부터 귀신을 쫓기 위해 팥죽을 쑤기 시작했다지.”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이사를 자주 다녔다. 집주인의 사정에 따라 방을 비워달라는 말이 떨어지면 곧바로 이삿짐을 싸서 집을 옮겨야 했다. 엄마는 '성실''믿음'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새기고 세상에 태어난 분이라 방을 주겠다는 사람은 주위에 많았다. 세간살이를 싸는 동안 부모님의 한숨은 그치지 않았다. 책을 건성으로 들고 있던 나는 어수선한 보퉁이들 사이로 수심 가득한 부모님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울컥’ 하는 마음을 차분하게 누르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어렸다.


날이 밝자 서둘러 리어카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짐을 싣고 있는 모습을 혹시라도 친구에게 들킬세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리어카 하나에 온 식구가 매달려 가는데 아는 체하는 사람이 나타날까 봐 부끄러웠다. 언덕배기에 오를 때는 온 힘을 다해 밀고, 내리막길에서는 있는 힘껏 끌어당기다 보면 어느덧  집 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방문을 열자 매콤한 연기가 코를 찔러댔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새 잠 못 이루던 엄마가 동이 트기도 전에 미리 오셨을 테다. 이삿짐을 넣기 전에 준비해 둔 바싹 마른 약쑥과 빨간 고추를 태워 매운 연기로 집 안을 가득 채워놓기 위해서다. 집안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잡귀를 쫓는 샤머니즘적인 의식이었다.


아버지가 세간을 정리하는 동안, 엄마는 커다란 솥단지를 꺼내 팥죽 쑬 준비부터 했다. 어쩌다 이사를 한 것도 아니요, 멀리 간 것도 아니건만 번번이 팥죽을 쑤는 엄마가 싫었다. 커다란 솥단지 안에 빙글빙글 주걱을 돌리며 무슨 생각으로 그 기나긴 시간을 버텨냈을까?


팥죽이 다 만들어지면 넓적한 사기 사발에 소담스럽게 퍼 담아 제일 먼저 방, 장독대, 부뚜막, 변소에 갖다 놓았다. 두 손을 합장한 엄마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입으로 연신 중얼거렸다. 집안을 지켜주는 가신들을 처음 만났으니 식구의 안녕무탈을 기원한다는 일종의 예식이었다.


골목에 있는 커다란 오동나무 아래 평상으로 두런거리는 소리가 하나둘 모여 앉기 시작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대접만 한 국자를 꽂아 솥단지째 들고나갔다. 방으로 들려오는 동네 사람들의 흥겨운 말소리보다 간간이 들리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더 듣기 싫었다. 앉은뱅이책상에 머리를 박고 귀를 틀어막았으나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잔치라도 벌어진 양 솥단지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미웠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다. 대학생 신분의 아버지를 만나 달랑 숟가락 두 벌 가지고 시작한 결혼생활이 어찌 평탄할 수 있었으랴. 풀 한 포기는커녕 자갈만 뒹굴던 거친 벌판에 그것도 맨발로 서 있던 부모님이었다. 하지만 힘겨움 속에서도 오로지 근면 성실을 발판으로 선하게 산 끝은 있었다. 드디어 내 집을 장만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가게가 딸린 번듯한 이층 집이었다. 거친 벌판에서 자갈을 고르고 땅을 일구느라 갈퀴손이 되었어도 세까지 놓을 수 있는 주인이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분명 이사 때마다 신앙처럼 팥죽을 쑤던 그때의 정성도 무관치는 않으리라. 내 집으로 이사하던 날, 동네에는 밤늦도록 축하 잔치가 벌어졌다. 그날은 동네 사람들의 수선스러움과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전혀 싫지 않았다.


지금도 엄마는 가끔 그날을 회상한다. 밤새워 두 개의 솥단지에 죽을 쑤어놨더니만 삽시간에 동이 나더란다. 웃는 얼굴에는 그날의 감격이 물씬 묻어난다. 엄마는 그 옛날 궁핍했어도 정으로 모여 살던 시절이 그립다며 명절에 세든 이에게 과일 상자를 보내기도 한다.


이사를 한다 해도 잘 가라는 이 없고, 이사를 온다 해도 반겨 주는 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빗장을 단단히 채우고 마음의 문을 바짝 닫아걸고 사는 게 현실이다. 나 또한 바늘구멍만 한 틈새 없이 단단히 무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웃이 함께 어울리며 도란도란 삶을 이어가는 진리를 일찌감치 터득했던 조상들의 여유로움이 더없이 그리운 때이다.


엄마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막내딸의 순탄한 첫발을 위해 이번에도 죽을 쑤었다. 마음을 열고 이웃 간에 정을 듬뿍 나누며 살기를 비는 마음으로 이 집 저 집 팥죽을 돌릴 테다. 엄마의 바람대로 동생이 살아갈 새로운 터전에 인정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를 빈다. 머지않아 그 터전에 꽃향기 그윽기를 그려 본다.

  

사발에 팥죽을 꾹꾹 눌러 담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이 햇살처럼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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