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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Oct 16. 2023

닮은꼴로 살아가는 사람들

엄마라는 이름

       

   아이들과 함께 동네에 새로 생긴 피자점을 찾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실내 장식을 둘러보는데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에 빠져있는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즐거운 일이 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화에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정겹다. 위로 여자아이가 셋인 걸로 보아 어린 사내아이는 늦둥이인 모양이다.


관심 있게 지켜보다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피자는 줄곧 자식들의 입으로만 들어가고 엄마는 그저 먹는 모습만 보는 게 아닌가. 더욱 희한한 일은 피자는 아이들 입으로만 들어가는데 배부른 사람이 엄마인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식욕 왕성한 아이들한테 피자 한 판으로는 충분치 않은 양일 수 있다. 너털웃음을 짓는 아버지는 막걸리를 좋아할 것 같고, 엄마는 노릇노릇한 김치부침개를 좋아할 듯한 푸근한 인상이다. 저들의 웃음 뒤에 감춰진 고단함이 읽히면서 내 부모님 얼굴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은 내리 딸 넷을 낳고 어렵사리 늦둥이로 아들을 보셨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 먹성 좋은 자식들 해 먹이느라 엄마는 늘 허기진 생활이었다. 반찬이라고는 된장찌개와 김치가 전부였던 밥상이었다. 밥상에 둘러앉은 우리의 손놀림이 재빨라 그것조차 엄마 입으로 제대로 들어갔을 리 없다.


변변치 않은 찬거리에 손쉬운 방법의 별미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게 달걀이었다. 둥그런 밥상 한가운데 모처럼 계란찜이 자리를 잡고 있던 날이었다. 식사하는 내내 철없던 동생들의 숟가락은 계란찜 그릇을 오갔고, 어머니의 애꿎은 숟가락은 신 김칫국물 위에서만 맴돌았다. 눈치 빠른 나는 자꾸만 싫다 하는 엄마 숟가락에 계란찜을 올려놔 드렸다. 그때 어린 남동생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는 계란찜을 못 잡수시는데?”


그토록 철없던 동생도 자식을 낳고서야 엄마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면서 멋쩍게 웃는다. 자신이 먹는 것보다 자식 입으로 들어갈 때 더 배가 불렀을 우리 엄마. 달걀은 비린내 나서 못 먹겠다고 둘러댔던 엄마처럼, 저 엄마도 분명 피자는 느끼해서 못 먹는다고 둘러댔으리라.


아득히 먼 훗날, 저 어린 자식들이 결혼해 자식을 기르면서 피자 먹던 오늘을 기억하리라. 먹는 모습만 흡족히 바라보던 엄마의 진심을 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다만 그때가 너무 늦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어느 날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온통 쑥 냄새가 진동했다. 외할머니는 약쑥 이파리를 하나하나 떼어내고 계셨다. 엄마는 오랫동안 앓던 관절염으로 무릎이 쑤시고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 속으로만 아픔을 삭여왔다. 자식에게는 내색하지 않은 아픔을 할머니한테는 눈물로 하소연했나 보다.


딸이 아프다는 말에 부리나케 약재상으로 달려간 할머니는 약쑥을 두 다발이나 사 오셨다. 할머니는 이파리를 숯불에 바싹 말려 곱게 가루 낸 다음, 손가락으로 일일이 불려서 부드럽게 준비해 놓았다. 자식의 부은 무릎을 어루만지며 손수 뜸질을 시작했다. 무릎 위로 세워진 작은 산 모양의 약쑥에 불이 붙자마자 연기를 피우며 서서히 타들어 갔다. 아흔 넘은 엄마의 애끓는 정성이 환갑 넘은 자식의 몸속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얼마 안 지나 통증이 조금 완화되어 걸을 수 있게 됐으니 뜸질의 효험을 본 것일까, 할머니의 약손 덕이었을까.


자식을 길러보니 엄마라는 자리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먹을 것을 보면 자식부터 챙기고, 밤잠 설치며 뒷바라지하는 게 엄마의 자리다. 온갖 희생을 퍼붓고도 부족해서 자나 깨나 자식 잘되기만을 빌며 희생하는 게 엄마다. 어미와 자식을 하나로 이어준 탯줄은 떨어졌어도 끈끈하게 잡아당기는 어떤 비밀스러운 줄이 존재하는 것 같다.


눈을 마주친 큰 애가 내 앞으로 내민 피자 조각을 아이의 입으로 돌려준다. 피자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내 배가 불러오는 듯하다. 나도 엄마의 길을 가고 있나 보다. 외할머니한테 물려받은 걸 그대로 나에게 전수해 준 엄마의 길. 나도 받은 그대로 자식들한테 나눠주고 싶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서로 닮은꼴이 되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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