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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Oct 18. 2023

털실로 짠 체육복

추억을 부르는 체육복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어느 누구도 가벼이 대하지 못할 목련꽃이 사방 천지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미색을 지닌 꽃잎 도톰해서 그런지 다 꽃에 비해 귀티가 풍기는 것 다. 가만히 들여다 본 꽃봉오리는 마치 은촛대에 꽂힌 촛불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것 같지만 절대 쓰러지는 법 없는 강인함 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본다.


겨울옷을 정리하려고 장롱 서랍을 뒤집기 시작했다. 서랍에서 스웨터, 조끼, 폴라를 비롯한 털옷들이 잔뜩 나온다.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좋아서 선뜻 사들인 것들이다. 털옷을 분류하며 문득 초등학교 3학년 때 입었던 체육복을 기억해 냈다.


"체육이 든 날에는 흰색 옷을 입고 와야 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옷을 살 형편도 안 되는 마당에 체육복은 분명 사치품 중 하나였던 시절이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며 장롱 위에 놓인 하얀 실뭉치를 내렸다. 치마폭에 실뭉치를 올려놓고는 당장 옷을 짜기 시작했다. 밤낮 없는 뜨개질은 정확히 사흘 뒤, 체육이 든 날 아침에서야 끝났다.


하얀 털실로 짠 체육복은 굉장히 예뻤고, 몸에 걸치기도 아까울 정도로 깨끗했다. 학교에 가려고 얼른었는데 몸에 너무 달라붙는 게 아닌가. 털옷의 성질대로 신축성은 좋지만 몸에  맞아 여간 신경 이는 게 아니었다. 운동장도 달리지 않았는데 진땀이 날 정도로 후끈거는 느낌이 들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엄마는 허리를 쭈욱 펴고 기지개를 켰지만 내 걱정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 이 옷을 어떻게 입고 가지?'


머뭇거리며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짐작대로 아이들이 쳐다보며 수군대는 것 같았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얼른 숨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잔뜩 움츠러든 나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은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우와, 정말 멋지네. 눈처럼 눈부신 체육복이구나.”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눈빛을 순하게 잠재우고, 놀리던 입도 굳게 닫아 준 담임 선생님. 지금도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는 분이다.  


나의 유년 시절, 아버지는 편물공장을 운영했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에 옷 짜는 기계를 몇 대 들여놓고 옷을 짰다. 당시 기계로 짠 옷이 대유행이어서 공장은 제법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편물공장은 문을 닫고 말았다. 함께 일하던 사람이 돈을 가지고 도망친 이유도 있었지만 새로운 옷감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일론은 사람들의 옷차림을 획기적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세탁하기도 쉬웠지만 무엇보다 가볍고 건조가 빨라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소재였다. 그뿐인가. 여간해서는 닳거나 해질 염려가 없으니 편물 옷은 당연히 나일론에 밀려 사양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남겨진 것은 오로지 숱한 실타래뿐, 실타래는 우리 집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점령군옷장이나 선반 할 것 없이 틈새만 있으면 염치도 없이 꽉 들어 말았다. 밤이 되면 뿌연 형광등 아래로 그것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듯해서 기분도 스스했다. 그때 나는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당장 살아갈 걱정으로 숱한 밤을 지새웠을 부모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는 철부지였다.


살림만 하던 엄마한테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대바늘로 옷을 짜는 일이다. 옷을 짜기 전에는 실타래를 풀어 뭉치로 만드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나는 엄마 옆에 차분 앉아 그 일을 도와드렸다. 다리 사이에, 혹은 양팔 사이에 실타래를 끼우고 한참을 빙글빙글 돌리다 보면 어느새 실뭉치가 만들어졌다. 실오라기가 솔솔 풀리면서 가지런하게 되는 것도, 조그맣던 것이 금방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하다가도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던 일을 재빨리 치우셨다. 엄마의 사랑으로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나는 손으로 하는 것이라면 대체로 잘 따라 할 수 있는 편인 뜨개질하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뜨개질을 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 한마디로 곁눈질는 것조차 막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실뭉치 장갑이나 양말로 변신하더니, 날이 갈수록 스웨터와 바지 같은 큰 부피의 옷으로 바뀌어갔다. 그럴 때마다 방의 공간은 조금씩 숨통이 트여갔다. 여러 색의 실을 겹쳐 짠 털옷은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졌다. 나와 내 동생입성은 여느 아이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멀리서도 뉘 집 자식인지 알아볼 정도로 특이했기 때문이다. 혹독한 위에 든든한 바람 막이가 되어 주었다.


학자들은 말한다. '어릴 적 환경이나 부모의 양육 태도가 인간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준다.'라고. 여우털이니 밍크털이니 하는 고급목도리보다 보슬보슬한 뜨개목도리 더 좋아하는 나도 예외는 아 셈이다. 수북하게 쌓인 털옷과 내 어린 시절 흑백사진이 겹치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털옷을 정리 상자에 담아두면서 다가올 겨울을 기약한다.


목련꽃이 지기 전,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서둘러야겠다. 목련꽃그늘 아래에서 아스라이 잊힌 체육복 이야기도 넌지시 꺼내봐야겠다. 하얀 털실로 짠 눈부신 체육복은 엄마가 물려준 포근한 추억이다. 그것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었노라, 이제는 고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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