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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Nov 12. 2023

사람은 가도 남는 게 있다

스스로 정리해야

    

  새벽녘에 눈을 떴다. 지난밤 꾸었던 꿈 속으로 차근차근 더듬어 들어갔다. 안개처럼 희미하지만 나에게 그릇 정리를 부탁하던 사람은 틀림없이 엄마였다.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다고 누누이 말씀드렸는데도 얼마나 심란했으면 나를 찾아 꿈속까지 왔을까. 엄마는 대뜸 부엌 찬장 문을 활짝 어젖히 그릇들을 가리켰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내 한숨까지 내쉬며 말끝을 흐렸다.

“이것들을 다 버려야 하는데.”


우리 일곱 식구와 수십 년 동고동락해 온 각양각색의 그릇들을 버리고 싶다니. 명절이나 식구들 생일이면 어김없이 찬장 밖으로 나와서 함께 즐거워 것들. 손님을 초대 날에는 거의 모두가 밖으로 출동해서 정성스게 손님을 맞이하곤 했다. 그런 것들을 하루아침에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다니.


하기야, 엄마의 그릇들이 밖으로 나오 빈도수가 점점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집이라는 공간에 다 함께 모여  먹을 수 있는 날이라고 해봤자 고작 명절뿐이다. 가족 생일에도 주로 밖에서 모이는 경우가 허다해서 음식 차릴 기회가 드물. 손님을 초대하는 것을 좋아했던 분이지만 이제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나이 아흔이 다 되어 그릇의 활용도는 완전히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셈이다. 지금 당장 처분해도 아쉬울 게 없는 성가신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쓰이지 않으면 짐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게 엄마의 평소 소신이다. 그렇다고 꿈속까지 찾아와 재촉하나,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 죽으면 저 많은 그릇을 어떡한다니?”

떠나기 전, 모든 걸 스스로 정리하고 싶다는 뜻인 줄은 알면서도 선뜻 수긍할 수가 없다. 내다 버릴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기 싫은 욕구가 강 탓이다.


누운 채 창밖을 보면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나야말로 미니멀 라이프 신경 써야 할 때가 아닌가. '

희뿌연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그동안 미뤄왔던 우리 집 찬장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자 음악부터 크게 틀어놨다. 아무리 힘들고 버거운 일이라도 음악과 함께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쉽게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찬장을 열었더니 빼곡하게 들어선 그릇들이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그릇 모으는 게 취미라 셀 수도 없이 종류가 다양하다. 대부분 식탁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계획적으로 들여온 것들과 충동에 못 이겨 마구잡이식으로 들여온 것도 있다. 그뿐이랴. 시집올 때 엄마가 해준 접시까지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특이하게 생긴 밤색 넓은 접시가 먼저 눈에 띈다. 은근히 감각적이면서도 고전미가 풍겨 음식의 품격을 높여줄 만하다. 미국 동생네 갔을 때, 쇼핑몰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인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떡을 담아 손님상에 내면 얼마나 맛깔스러울까.’

여행지에 와서까지도 그릇을 탐하는 나를 보는 눈은 곱지 않았다. 한참을 옥신각신한 끝에야 그 무거운 것을 꾸역꾸역 비행기로 실어 올 수 있었다. 가족들의 지청구를 원 없이 들어야 했던 그날이 떠올라 슬쩍 미소가 번진다.


계절별, 용도별로 가지런하게 진열된 그릇들을 구경하다 보면 공연히 설렌다. 내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은 평범한 것보다는 주로 특이한 모양이나 분위기를 살려줄 만한 것들이다. 마음에 쏙 드는 것을 만날 때는 기어코 내 것으로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날은 그 어떤 물건을 샀을 때보다 횡재한 기분이 든다. 찬장이 비명을 질러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나는 그릇에 욕심이 많다는 걸 인정한다.


손님 초대 상에는 특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그릇이 적합하다. 손님에 대한 극진한 마음을 말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여준다는 뜻이다. 음식 맛도 한결 더 좋아 보이고, 존중받는다는 느낌도 들게 한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다.’라는 말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더 마음에 와닿는 이유다.


얼마 전에도 개성 있어 보이는 그릇 한 세트 사들였다. 양쪽으로 손잡이가 있고,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흰 도자기인데 단호박 수프를 담으면 색감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어머나, 너는 아직도 살림에 열정이 있구나.”

환갑을 넘기기도 전에 부엌문을 닫아버렸다는 친구가 그릇 자랑하던 내게 말했다. 그동안 삼십 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식탁을 차렸으니 이제는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말에 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림을 줄이고 나도 단출하게 살아가겠다 선언한들 뭐라 꾸짖을 사람은 없을 테다.


정리 좀 해보자고 그릇을 죄다 내놓았지만 계획했던 게 어그러졌다. 하나하나 나를 보는 것들을 만지며 상념에 젖다 보니 버릴 만한 것 하나도 고르지 못한 거다. 그릇마다 소복하게 담긴 정을 냅다 쏟아버릴 만큼 나는 몰인정하지 않다. 내놨던 그릇을 슬그머니 다시 찬장 안으로 차곡차곡 밀어 넣는다. 대신 언제든 손쉽게 꺼내 손님 앞에 내보일 수 있도록 보기 좋게 정리해 두었다.


 다행다. 멋스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 사람들의 입과 눈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아서. 친구의 말처럼 음식에 대한 열정이 아직 식지 않은 것 같아.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마음을 나누기 위해 음식과 잘 어울리는 그릇을 고르는 재미가 여전해서. 그 재미를 오래도록 느껴보고 싶지만 이 또한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안다. 엄마가 그러하듯 언젠가 나한테도 마음뿐이지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올 테니까.


스스로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날이 다가옴에 따라 엄마처럼 미지의 세계로 들어설 것에 대해 초조해질 수도 있다. 초점 없는 흐릿한 눈동자는 금세 촉촉해질 것이고, 목소리조차 길 잃은 새처럼 바작거릴 수도 있다. 지극히 소심한 성격 탓이다. 속세에 구차하게 미련을 두지 않는 엄마의 강단을 과연 뒤따를 수 있을까.

노랫말 '사랑은 가도 옛날 남는 것'처럼 사람은 가도 그릇은 는 것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남겨진 추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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