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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Nov 20. 2023

원 달러!, 원 달러!

 ‘원 달러! 원 달러!’


귀에 쟁쟁거리는 말. 캄보디아를 다녀온 지 한참 지났는데도 환청처럼 들려온다.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강한 인상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나 보다.


식당이나 호텔 앞은 물론 유적지 입구에서도 ‘원 달러’를 외치는 소리는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관광객의 앞을 막으면서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원 달러’를 외치던 아이들의 눈망울은 순수해 보였다. 비쩍 마른 체구에 남루한 옷을 걸친 채 손을 벌리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 그 자체였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아이들한테 지갑에 들어있는 1달러짜리 지폐를 모두 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1달러라 해봐야 고작 천 원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큰 가치를 지닌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이드는 구걸하는 아이들한테 절대로 동정심을 갖지 말라고 미리부터 신신당부했다. 한국 관광객들이 무심코 쥐어 준 돈이 오히려 그들에게 나쁜 습관을 만들어 준다. 관광객들 사이를 매일 기웃거리 돈을 벌다 보니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문제가 생겨났다.


식당 문 앞에 바짝 기대어 손님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골격 자체가 왜소하고 야위어 살건드리기만 해도 힘없이 픽 쓰러질 럼 보였다. 그나마 도시의 호텔 앞에서  아이들의 입성은 조금 나은 편에 속했다. 빈민층들이 모여 사는 톨레샵 호수 주변에 즐비하게 서 있던 수상 가옥에행색이 더욱 초라한 아이들 뿐이었다. 황톳빛을 띨 정도로 오염되어 악취가 진동하는 호수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으로 궁핍한 환경이었다.


하루는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멀리에서 나룻배 한 척이 뒤집힐 듯 말 듯 위태롭게 노를 저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룻배 안으로 연신 물이 고이는 것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 아낙네가 억척스럽게 노를 저어왔다. 노를 저을 때마다 등에 매달린 젖먹이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조금 큰아이는 세상모른 채 구석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엄마와 함께 노를 젓던 제일 큰 아이는 이내 우리가 탄 배로 뛰어오르려고 바짝 다가섰다. 관광객이 탄 배가 나타나자 동냥을 하기 위해 날쌔게 따라온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도 물론 ‘원 달러’는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뒤뚱거리는 나룻배에서 날렵한 동작으로 이쪽 배의 난간으로 올라탄 아이가 ‘원 달러’를 외치며 손을 벌렸다. 못 들은 체하고 딴청을 부리는 사람들의 어깨를 톡톡톡 주무르며 안마사 흉내 내며 관심을 끌려고 애썼다. 일찌감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내 손은 1달러짜리 지폐를 계속 만지거리면서 주위 눈치를 살폈다.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던 우리를 본 가이드가 냉정한 눈짓을 보냈다.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나이에 동냥으로 쉽게 살아가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애절한 눈빛으로 원 달러를 요구하는 아이를 외면하기가 힘들었으나 나의 동정심이 오히려 그들의 장래에 도움은커녕 해가 된다고 하니 슬그머니 손을 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때, 아이들 한 무리가 가이드 주변을 맴돌며 우리 일행을 반갑게 환영했다. 오후반 학교 수업을 받기 전, 장사하러 나온 아이들이라고 소개했다. 집에서 만든 수공예품을 정당하게 팔아서 그 돈으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옆구리에 소쿠리를 낀 아이들은 하나같이 갖가지 색깔의 팔찌를 주렁주렁 차고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티 없이 맑아서 무조건 주고 싶었다. 소쿠리에 담긴 팔찌를 모두 사주고, 준비해 간 라면과 종이, 연필 등을 고루 나누어 주었더니 한국말로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은 관광객들 앞에 서서 ‘아리랑’을 비롯하여 ‘고향의 봄’ 등 귀에 익은 동요 몇 곡을 능숙한 한국말로 불렀다. 곡이 끝날 때마다 손뼉을 쳐주는 우리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환영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아이들은 합창하듯 우렁차게 말했다.

“꼭 성공하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가이드 앞으로 길게 줄을 늘어섰다. 가이드는 이미 이곳 주민들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틈틈이 한국말과 글씨, 노래를 가르쳐 주고, 동냥 대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타일러 왔다고 한다. 가이드는 아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씩을 나눠주었다. 큰돈을 들여 이곳에 학교를 짓고, 우물을 만들어 주었다는 유명인사의 기사를 접했을 때보다 더 큰 감동이 밀려왔다.


캄보디아를 떠날 때까지도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던 ‘원 달러’는 아직도 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한 눈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아이들의 슬픈 눈빛이 아직도 어른어른하다. 그 아이들이 동냥 그릇 대신 책가방을 메고, 관광지가 아닌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순박한 그 아이들이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내 손은 아직도 주머니 속에서 1달러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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