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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Sep 19. 2023

초가집 예찬

서로의 가슴에 새긴 꿈 하나

"노년이 되면 기와집에서 살고 싶어, 초가집에서 살고 싶어?”


친구는 내 물음에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초가집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다시 한번 더 물어봐도 변함없이 초가집이라 대답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여 왜 초가집이 좋으냐 물었더니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기와집은 처마 끝을 밖으로 둥글게 말아 올려 하늘을 향하고 있지? 마치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잖아. 그에 비해 초가집은 한없이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겸손해 보이잖아. 나는 겸손한 삶을 살고 싶어.”


사회에 나와서 만난 우리는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자주 대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속이 깊고 철학의 깊이가 단단한 친구라는 것을 느낀다.

겉치장하지 않고 낮추면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좋아. 잘났다고 뽐내지 않고 조용하게 살 수 있는 초가집에서 나의 노년을 보내고 싶어.”


젊은 시절에 나는 실내장식에 관심이 많았다. 잡지에 소개된 좋은 집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스크랩해 두었다. 특히 넓은 잔디밭에 세워진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을 볼 때면 비록 사진이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이런 멋진 집에서 꼭 살아볼 테야.’


주택에 대한 즐거운 상상과 함께 사진은 자꾸 쌓여만 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첩을 들여다보미래의 집을 들춰보 것은 가슴 뛰는 일이었다. 넓은 집에 어울리는 실내장식을 떠올리며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에 대해 꿈꾸는 것 무엇보다 신바 났.  


결혼할 때 가지고 간 두꺼운 스크랩북 열 권을 넘어갔다. 신혼 때에는 잡지책에서 본 집처럼 꾸미고 싶어서 밤까지 새우기도 했다. 옷감을 떠다가 커튼을 만들어 전원풍으로 꾸미는 일에도 취미를 붙였다. 비록 남들에게 내보일만한 솜씨는 아니었어도 나만의 개성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볼때는 만족스러웠다. 순전 자기만족었을 테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는 점점 그런 것들이 무슨 대수란 말이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멋진 집에 대해 점차 관심이 멀어지면서 사진 속의 대저택들도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우리 집 가정 경제에 대한 주제 파악을 제대로 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집이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 달리 생각해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집의 역할이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콘크리트에 갇힌 삭막한 도시보다 전원에 있어야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고 화려한 집보다 토속적인 느낌을 주는 소박하고 아담한 집이 더 마음에 들어왔다.  큰 기대감이나 욕심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나니 자연스레 흙벽의 초가집이 눈에 밟다.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 빨간 고추를 말리던 고향 집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평상에 누워 무수히 쏟아지는 별을 헤아리던 고향 하늘도 자주 떠올랐다. 토담 아래 줄을 맞춰 늘어선 크고 작은 항아리는 상상만 해도 몸과 마음을 안정되게 해 준다. 마당 가운데 한가로이 노니는 닭에게 모이를 주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창호지 위에 드리운 으스름 달빛은 멋스럽기도 하지만 마음을 순하게 해주는 기능까지 담고 있다.


친구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릴 적 살던 고향의 사랑채가 떠올라 얼른 말을 꺼냈다.

 , 초가집에는 화로도 하나 있어야 해.”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치는 친구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다.

 그래, 고구마도 구워 먹을 수 있으니 좋겠네.”


오래도록 식지 않는 온돌방에 뒹굴면서 책도 읽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다고 우리는 입을 모았다. 눈빛이 선하여 주위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그녀. 시골에서 태어난 나처럼 자라온 환경이 비슷해서 그런지 무슨 말든 서로 잘 통하는 친구 사이가 오래도록 식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려면 더 많은 것들을 투자해야 할 것만 같다. 넓은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리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외형의 치장을 위해서 쉬지 않고 머리와 몸을 써야 할 테다. 그런 큰 집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고민도 많아질 테니 건강도 해칠 수가 있다. 덩치 큰 기와집에 비해 초가집은 걱정거리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그저 먹고살 만한 정도의 양식거리만 있으면 되니까. 우리가 노년에 찾아야 할 곳은 바로 겉치장 없이 겸손하게 살 수 있는 초가집이라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친구와 함께 '초가집' 예찬을 하는 내내 서로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첩첩산중에서 만난 맑은 시냇물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은 듯 오늘의 만남도 역시 상큼했다. 손발이 척척 맞아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우리 사이를 질투하는 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 안심이다. 


우리는 석양 노을 짙게 깔리는 저녁이 되어서야 서로의 가슴에 꿈 하나를 간직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노년에는 꼭 초가집에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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